햇살이 좋아서 / 최지후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기온이 계란탕처럼 풀렸다. 집으로 돌아가 오후에는 밀린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햇살이 자꾸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지난 금요일,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웬만하면 일주일에 한 번만 엄마를 만나자고. 엄마의 퇴원이 두어 차례 헝클어지면서 나의 일상에도 바람구멍이 커졌다. 그런데 쇠리쇠리한 빛과 따스한 기운에 빗장이 스르르 열려버렸다.

일주일이면 해결될 줄 알았던 엄마의 병원 생활이 두 달을 넘어섰다. 늘어진 만큼 답답함과 지루함이 출몰했고 짜증도 기웃댔다. 이를 지켜보던 남편이 어느 순간 엄마를 바퀴 의자에 태워 병원을 누비고 다녔다. 찡그리던 표정이 서서히 피어났다. 이후로 병원을 방문하면 기대하는 눈치여서 일삼아 바퀴를 굴렸다. 남동생에게도 귀띔하여 시승하도록 부추겼다. 아이처럼 좋아하여 밖으로 나섰다가 바람에 쫓겨 금세 들어온 아쉬움이 있다. 홍합처럼 입을 다물고 좀 냉정해지자고 다짐했건만, 쏟아지는 햇살에 맘이 벌어져 엄마가 입맛을 다시던 과일을 챙기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살림할 때도 햇볕이 좋은 날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외출하지 않은 날은 몇 차례 세탁기를 돌렸다. 이불빨래도 강행하였다. 말릴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베란다에 풀어 놓았다. 심지어 식구들 칫솔도 꺼내 햇볕에 말렸다. 조붓한 베란다와 빨랫줄이 성에 차지 않아 아쉬웠다. 그러면서 노후에는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겠다는 바람도 들였다. 순전히 햇살이 좋은 날에 이불을 빨아 널고 싶은 일념이 컸다. 햇볕을 붙잡을 수 없으니 고슬고슬 말린 빨래나 이불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욕심이었을 게다.

햇살에 대한 유혹은 뿌리가 퍽 깊은 듯하다. 시골에서 자라 날이 풀리면 사방을 휩쓸고 다녔다. 초록을 몰고 오는 햇살이 묶인 고삐를 풀었던 듯하다. 봄이면 언니들을 따라 쑥을 캐러 다녔다. 양지바른 산밭을 오르며 우부룩한 쑥 무더기를 찾아냈다. 요령을 부릴 줄 아는 셋째 언니의 말을 귀동냥하여 쑥이 많은 곳에 바구니를 놓는 치밀함도 발휘했다. 초여름 언저리에 주전자를 챙겨 산딸기나 오디를 따러 넓적 바위가 있는 뒷산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가시나무 틈새로 손등이 긁히는 아픔보다 아슬아슬 낚아채던 산딸기의 감칠맛이 더 짜릿했다. 오디를 양껏 따먹고 입이 까매서 산을 내려오던 날도 늘 만개한 햇살이 호위무사로 따랐다.

친정집 뒤란에는 널찍한 장광이 있다. 뒤쪽은 키순서로 항아리가 놓여있고 앞으로는 자잘한 돌들이 깔려 있다. 햇볕이 담뿍 깃드는 곳. 설거지한 후, 냄비나 큰 그릇을 이곳으로 들고나와 널어두는 습관은 가풍이다. 장광의 경계석에 앉아 종종 해바라기를 했다. 봉숭아를 찧어 이곳에 앉아 싸매었고 소라껍데기를 깨트려 숨은 부분을 빼먹었다. 장광 둘레에 피어있던 샐비어나 맨드라미의 기억도 붉다.

유년의 생기로움은 어쩌면 햇살 덕이었는지 모르겠다. 정신과에서도 우울증에 걸린 환자에게 햇살 처방을 곧잘 내린다. 햇빛을 쐬면 뇌에서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 만들어져 만족감과 행복감이 올라간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이나 불안이 잠입할 수 있어 특히 햇빛이 귀한 겨울철에는 손수 찾아 나서야 한다.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법도 비슷하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서 해와 보폭을 맞추어야 생체리듬을 알맞게 유지한다. 해의 기상과 취침에 따라야 하겠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은 주인공이 버스를 타고 고향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제약회사 전무 승진을 앞둔 그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이라는 속생각을 궁글린다. 바다가 운동장이었던 터라 햇빛과 해풍의 효능을 안다. 주인공이 자부하듯 이런 수면제는 어떠한 약보다 상쾌하여 날개 돋친 듯 팔릴 게다. 백만 번 보증할 수 있겠다.

병실에 들어서자 누워 있던 엄마의 눈빛이 일어선다. 오늘은 햇살에 이끌려 왔노라고 호기를 부리며 성성한 휠체어를 고른다. 가볍게 걸칠 엄마의 외투를 챙기고 나들이에 어울릴 간식거리를 채비한다. 휠체어를 밀자 엄마의 어깨에 신바람이 올라탄다. 병원 정문을 벗어나 오가며 보아둔 문화광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평일 오후라 퀵서비스맨 몇 명이 어슬렁거릴 뿐 한산하다.

햇빛샤워로 오랜 병실 생활의 눅눅함을 털어볼 요량이다. 큼직하게 원을 그리며 일곱 바퀴를 돌겠다고 안내했다. 자연 영양제를 배불리 먹어야 한다고 사근사근 설명하자 엄마도 흔쾌하다. 대리석 카펫 위에서 햇살과 한바탕 맴을 돌았다. 거친 숨을 달랠 겸 가족 조각상이 세워진 맞은편에 자리를 편다. 바퀴 의자에 앉은 엄마의 볼도 발그레하다. 과일을 먹으며 엄마와 이야기 망울을 터트린다. 어미는 병실 치매할머니 근황을 주절주절 펼친다. 딸은 손이 많이 가는 가족의 족적을 찍어댄다. 이런 날은 속을 털어내고 폐부를 바람 치는 일도 빠트릴 수 없다.

집으로 향할 시각이면 엄마는 으레 바쁘니 자주 오지마라고 하신다. 하지만 배웅하는 눈빛은 대조적이다. 엄마의 이중 메세지가 늘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오늘 엄마의 표정은 상긋하다. 햇살이 안겨준 선물이지 싶다.

세워둔 일정을 무질렀으나 햇살이 좋아서, 햇살 덕분에 제대로 효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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