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거장, 그를 추앙하다 /김정화

 

 

“브라보!”

​

객석의 함성이 비명처럼 터진다. 불꽃으로 소진되는 한 연주자를 보았다. 그의 눈빛, 그의 몸짓, 그의 음악이 끝났다. 한바탕 솟구치던 거대한 불길이 사그라졌다. 소리로 그리는 그림, 건반으로 쓰는 시,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연주였다. 노 지휘자가 눈물을 훔치며 더벅머리 청년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무대는 끝났지만 지휘자는 쉬 내려가지 못하고 협연자들까지 기립박수로 화답하고 있다. 세계적인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임윤찬 군의 실황 영상이다.

​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그가 아니었으면 이 곡을 이렇게도 많이 들었을까. 흔히 클래식의 지식이 바닥이라 불리는 ‘클알못’ 수준인데도, 사십여 분 연주 동영상을 수시로 클릭한다. 특히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서 피날레 장면까지는 오늘 하루만도 몇 번째 돌려보는 중이다. 그의 음악이 “바람에 흔들이는 꽃처럼 나를 떨게 한다.”는 어느 분의 댓글마저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

고조되는 음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광풍이 휘몰아치는 들판을 질주하게 된다. 쏟아지는 별빛을 맞고 내리치던 폭포수를 지나 돌진하는 기관차와 맞닥뜨리는 순간, 몽환의 늪에서 눈을 뜬다. 하지만 그가 연타로 건반을 꽝꽝 때릴 때는 갑자기 터지는 폭죽 소리에 온몸을 떨고 만다. 마치 휘몰아치던 토네이도가 쏟아부은 빗줄기에 뼛속까지 숭숭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

분명, 이 곡을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다. 감명 깊게 본 영화 ‘샤인’에서 주인공 데이비드가 초인적으로 연주하던 곡이 아니던가. 수년이 지났지만 생각해 보면 영화 속 음악보다는 피아노를 치던 배우의 연기 장면이 더 뚜렷하다. 땀에 젖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건반을 짚어가던 기다란 손가락의 이미지만 강렬하게 남아 있다.

​

내친김에 그의 준결선 곡인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 장면을 다시 듣는다. 이번 콩쿠르 우승이 워낙 주목되다 보니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이 곡이 악마적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 중의 난곡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전주곡에 이어 풍경, 회상, 밤의 선율, 눈보라 등 열두 개의 주제가 시적 제목을 연상시킨다. 한 시간여 연주하는 동안 그도 문학적 상상력을 선율에 더했으리라. 이미 이전에 ‘단테 소나타’를 칠 때, 곡을 이해하기 위해 ‘신곡’을 외울 정도로 읽었다고 했으니까.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위험해진다는 신념을 가졌으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책 속의 구절 또한 기억하고 있을지도. 흐트러짐 없는 연주자의 표정에서 숭고한 구도자의 면벽이 겹쳐진다.

​

쓰러질 때까지 하는 것이 연습이라고 했다. 하루 열여섯 시간씩 연습했으니 밥 먹을 시간 빼고는 피아노를 쳤겠다. 너무 힘들면 밖에 나와 딱 십 초만 쉬고 다시 시작했다는 고백에서는 누구라도 실색하여 할말을 잃고 말 것이다. 진정코 자신을 음악에 제물로 바치는 자이며 그러한 사람만이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나는 악보를 암기하는 그의 능력에 감탄한다. 준결승 이후에 선곡한 네 곡의 연주 시간만 해도 무려 세 시간이 넘는다. 그는 악보를 모두 어디에 새겼을까. 내가 수필 한 편을 읽더라도 채 이십 분이 되지 않는데, 세 시간짜리 글을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외운다는 것은 절대 불가한 일이다. 심지어 삼 분 낭송도 어림없다.

​

물론 그의 뒤에는 위대한 부모와 뛰어난 스승과 그 스승의 스승이 있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 훌륭한 작곡가가 있었고 그가 존경하는 삼국시대의 음악가 우륵이 있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숙식을 지원해준 하숙집 주인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결코 거만하지 않다.

​

간혹 나는 음악이, 문학이, 그리고 예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물음은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닫는다. 최선을 다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으니까. 그러니 음악에 진실된 마음을 담아내는 열여덟 천재 소년, 나는 그를 추앙한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