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얏고의 환幻 / 조향미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경건하고 순결하다. 능선의 햇살은 그날처럼 따뜻하다. 윤사월 잔디는 푸른 벼처럼 청기가 충만하고 듬성듬성 서 있는 소나무는 긴 그림자를 끌고 있다. 낮과 밤이 모여 하루를 이루고 나날이 쌓여 세월이 되건만 내일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구릉 위 고분들이 다도해 섬을 이루었다. 호젓한 산책길은 옛 가야국으로 들어서는 오름, 둥글게 엎드린 봉분은 하늘과 맞닿으려는 신성한 기도, 현생은 미래로 이어진다는 가야인의 염원을 담고 있는 성소다. 대가야 지산동 고분군, 그곳에는 순장의 아픔이 잠겨 있다.

 

소녀는 먹먹히 서 있다. 깨끗이 목욕하고 밤하늘을 쳐다본다. 이승에서 보는 마지막 달이다. 달빛도 이슬비처럼 애달프게 내린다. 희끄무레한 동녘이 밝아 오자 부모님께 마지막 절을 하고 형제들의 비통한 눈길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선다. 길섶에는 붉은 작약이 마지막 손짓으로 배웅하고 봄바람은 낡은 치마를 감싸준다. 가야의 들녘에 점점이 서 있는 소나무는 이렇게 배웅할 것이다. ‘조용히 가거라 순장은 헌신의 죽음이란다’.

 

죽음이라는 세계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통치자의 욕망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요구한다. 지배계급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무덤을 만들어 권세와 영광을 과시했다. 그들이 누울 분묘 안에 평소 신분을 알려주는 소장품 외에도 거느리던 시종과 백성까지 함께 묻었다. 그 풍습은 사후에도 삶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계세사상繼世思想을 구현한다. 순장자는 인격체가 아니라 지배자의 위세를 나타내는 부장품에 불과했다.

 

권력자를 따라야 하는 약자의 시대는 가야골에만 있지 않았다. 한반도의 소녀도, 이집트의 동자도, 페루의 갓난아기도 그렇게 목숨을 바쳤다. 순장은 분명 두렵고 기괴한 일이지만 죽음보다 어둠이 더 두려웠을 아이에게 남은 가족을 위해서라고 으름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생매장만큼 한 맺힌 이별이 달리 있을까.

 

우륵이 하얀 도포 자락 위에 금琴을 안고 널마루 위에 정좌하고 있다. 시선은 기러기 떼처럼 늘어선 버팀목을 향하고, 섬세한 다섯 손가락이 명주실 줄 위를 거닐 준비 한다. 하늘 향해 한숨 들이키고 현을 깊숙이 누른다. 초연하고 낮은 울림이 휘영청 보름 달빛과 만난다. 떨어지는 꽃잎은 나비가 되고 땅에 뒹굴던 낙엽이 다시 꽃으로 핀다. 가슴 속 애간장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흩날리면 우륵의 두 눈에는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른다.

 

‘서러워 말아라, 살고 죽는 것은 똑같다. 그냥 자는 듯 잠들어라.’ 그건 손이 켜는 음률이 아니고 현이 다독이는 위로다. 가야금 소리를 듣노라면 가슴에 맺힌 울분이 울대 넘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만큼 아름다운 위로가 없다. 가야의 혼을 받은 소녀가 조용히 우륵 옆에 좌정한다.

 

우륵은 나라 잃은 백성을 위로하며 탄금한다. 오동나무도 속을 비워야 금의 소리를 내듯이 뺏기고 잃어버린 역사는 금의 가락에 얹혀야 삭고 풀리어진다. 악사가 망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가야금 열두 줄로 민초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것뿐이다. 따스한 윤사월의 밤이든, 국화꽃 피는 시월이든, 하얀 도포 자락 위에는 늘 눈물이 떨어졌다.

 

천천히 발디딤새를 옮긴다. 응어리에서 깨어난 감성이 무舞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가야금 가락이 너울에 실리자 몸은 현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율律은 벼랑을 오르는 바람처럼 가팔라지고 무희는 끓어오르는 심정을 손끝에 모은다. 가녀린 허리는 꺾어지며 여울지고, 치맛자락은 바람에 덧없이 감긴다. 휘돌다 흩어진 머리카락 한 올이 뺨 위로 흘러내린다. 현의 눌림이 잦아들면서 가슴에 묻은 한을 풀어내듯 깊은숨을 내쉰다. 무희의 눈가에도 마침내 이슬처럼 촉촉이 젖어 든다. 소녀의 혼과 율과 무가 환幻을 이룬다.

 

사람은 누구나 역사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 고분군 가운데 서서 눈을 감고 귀를 연다. 한 무리가 축담을 쌓고 성벽을 만들고 강둑을 올린다. 또 다른 무리는 그 축담을, 강 벽을, 성벽을 부수고 무너뜨린다. 역사 위에 역사가 쌓여 지지만 남는 것은 풀 우거진 계곡과 언덕과 봉분뿐이다. 숱한 세월이 흘러 시인과 악사와 무희가 그곳에 찾아와 시를 짓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무현금의 선율은 미리내로 흐르고 농현한 가락에는 절제와 기품이 묻어난다. 사람은 몸으로 시를 짓고 노래하고 춤을 추기에 그나마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늦봄 구릉은 쓰개치마 쓴 여인처럼 은밀하면서도 정갈하다. 고분 옆 조그마한 소나무는 곧게 앉아있는 비구니 같다. 가야 소녀가 그 곁에 서서 아래 평원을 내려다본다. 순장했던 계절은 올해도 꽃을 피우고 씨를 여물게 하고 열매를 맺고 있다.

가야금 소리와 숙연한 춤사위로 다시 눈을 뜬 소녀. 들꽃에 물든 치맛자락 움켜쥐고 한 발자국 내디딘다. 가야의 바람은 그날처럼 따뜻하게 불고 푸른 하늘에는 새 한 마리가 먹선 그리듯 날아간다.

 

능선에서 무희와 소녀가 사붓한 걸음으로 걸어온다. 가야 소녀여, 나의 할미, 할미, 할미였을 소녀여, 저 드넓은 들녘으로 내려가자꾸나. 함께 맞잡은 손에 천년 숨이 어려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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