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 최연실
소설小雪이다. 공항으로 가는 길목엔 바람에 흩어진 낙 엽들이 허공에 무늬를 그리며 배웅한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데 가슴 한편이 철렁한다. 아직, 부치지 못한 편 지가 산더미다.
언니와 함께한 열흘간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대학에 쓴 고배를 마셨을 때, 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택했다. 언니와 나는 생김새만 다를 뿐, 비슷한 성향이다. 언니 가 자주 다녔던 종로서적과 학림다방을 나도 종종 기웃 거렸다. 언니가 대학 시절, 사르트르와 시몬느 보부아르 에 심취했을 때, 나는 전혜린을 사랑했다. 언니와 마주 33 무소의 뿔처럼 하면 나를 보는 것 같아 움찔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 나 둘만이 있는 지금, 예견치 못한 이상 기류가 흐른다.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서의 삶이 더 길건만, 여전 히 성향은 보수적이다.
“왜, 하필, 제주도니? 이 먼 곳까지….”
연고도 없는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말에 어처구니없 는 표정이다. 나는 화두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 묵 은 향을 간직한 원피스를 장롱에서 꺼낸다. “언니, 이 옷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
지난해 이맘때였다. 고즈넉한 성북동의 한옥 마당에 는 대추가 익어가고 있었다. 소나기가 내린 뒤라 처마 밑 에 걸린 풍경 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자매는 대추차와 호 박범벅을 주문하고 툇마루에 앉았다. 나는 ‘로댕’의 <생 각하는 사람>처럼 한쪽 다리를 세우고 오른손으로 턱을 받친 자세였다. 언니는 ‘파티마 헤서’의 조각상처럼 양쪽 다리를 세우고, 그 사이에 어깨를 웅크린 채 깍지를 끼 고 있었다. 소슬바람에 풀어 두었던 스카프를 다시 두를 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육각 소반에 차와 범벅이 놓여 있었다. 빨간 대추는 오랜 시간 34 나리꽃은 잘 있나요 숙성했는지 검붉은 빛을 띠었다. 걸쭉한 맛이었다. 그 때 언니는, 내가 같은 꿈을 꾼다는 것에 동의했고, 행복 해했다. 자신이 아는 걸 나눠주지 못해 안달 나 있었다.
“제주에서 곧 올라올 거지?”
“그럼.”
그 후,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나는 마음이 변해 정 착을 결심했다. 언니는 그날의 약속을 곱씹으며 다그쳤 다.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한다는 건 다시 처음부터 밟아 가는 기나긴 과정이라고 말했다. 나도 지지 않았다. 이 젠 익숙해진 제주에서의 삶이,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 스와 같다고 결연히 대답했다. 가끔 외로움이란 고질병 때문에 막막할 때도 있으나, 그건 생명을 가진 존재의 본 능 같은 것이라 둘러댔다.
언니는 내가 선물한 원피스를 내동댕이치듯 벗었다. 언니의 속상한 마음을 외면한 채 나는 빛바랜 책꽂이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오래전에 읽은 카뮈의 《이방인》을 꺼내 들었다. 언니는 조용히 책상 위에 놓인 시집을 뒤 적였다. 침묵이 이어졌다. 지난날의 언니는 외로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라고 35 무소의 뿔처럼 했다. 그랬던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걸까. 누구보다도 나 를 이해해 줄 것이라 믿었는데, 지금 언니의 행동은 자 기 생각에 집중되어 있다. 어색한 분위기를 매듭짓고 싶 었다.
“언니, 와인 할래?”
갈잎들이 속삭이는 가을밤, 처절하게 혼자가 되어 본 사람만이 당당하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던 언니가 아 니던가. 그리 말하며 부대끼며 살아가라고 하지 않았던 가. 혹한 겨울로 향하는 늦가을의 바람이 녹록하지 않 다. 나는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내 길을 가고 싶은데 그걸 이해 못 하는 피붙이라면 남과 다를 게 없다.
내 방식을 무작정 방황이라고 하니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그냥 물이 흐르듯 옆에서 기다려 주면 안 되 는 걸까. 보통의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에 맞춰 살기 에는 모난 성격이 아니던가. 그런 내가 동생이었음을 알 면 좋으련만. 언니는 밤새 뒤척거리더니 지우다 쓴 편지 한 장을 침대 머리맡에 놓고 미국으로 떠났다.
<사랑하는 동생 보아라. 너와 내 삶의 방식이 다름을 안다. 하지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네 방황도 함께 묻 36 나리꽃은 잘 있나요 길 부탁한다. 아프락사스에 날아간 새처럼 창조를 위한 힘겨운 움직임에 다시 너의 자신을 실어 보길 바란다.>
세 번의 가을을 보낸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 건 아니 다. 그걸 증명할 날이 있으리라 믿기에 나는 당당한 모 습으로 올해도 한라산의 백설을 맞으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