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바람을 벗다 / 서은영
야트막한 뒷산이라도 편백나무 숲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휘거나 굴곡 없이 곧게 뻗은 편백 숲은 단순한 직선의 리듬이다. 아침 햇살이 사선으로 기둥 사이를 교차하면 숲은 밤새 모았던 하늘과 땅의 기운을 공기 중에 내뿜는다. 햇살과 하늘과 땅의 억겁의 기운이 버무려진 치유의 향기. 그 포말 속에 마음의 불길을 잡는 방화수가 있고, 농도 짙은 산소가 쪼그라진 가슴을 후욱 다시 부풀게 하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삼천 일 같은 한 달을 보냈다. 천 번의 자살을 생각했다. 천 가지 방법들이 썩은 저수지 물이 끓듯 부글거리며 떠올랐다. 선물처럼 남편 앞에서 사라져줄까 싶다. 변덕도 같이 덜썩이는지 금세 이대로는 억울해서 죽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천 가지의 살인을 구상한다. 두 사람이 사라진다면……. 아니, 애초 없었던 한 사람만 다시없어진다면 마음속의 불도 꺼질 것 같다.
그가 바람이 났다. 나는 바람인형처럼 헝클어 나부꼈다. 주말부부에게 신혼의 여느 하루 같은 주말이 그날만은 그렇지 않았다.
남편이 잠든 사이 휴대폰이 울렸다. 짧게 울리고 끊어진 전화는 몇 분쯤 지나 다시 울리고 있었다. 설마 설마하면서 묻어두었던 심증이 물증이라도 잡겠다는 듯 작심하며 일부러 받았다. 낯선 여자다. 낯선 여자 역시 낯선 여자의 “여보세요?” 목소리에 놀랐는지 “ooo씨 폰 아닌가요?” 되물었다. “ooo씨 와이프인데 누구세요?” 했더니 대꾸 없이 끊어버렸다.
예상했던 일인데도 당혹스럽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우연히 수상쩍은 문자를 들킨 남편을 추궁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거래처 사장이랑 자주 가는 술집 이모라고 했다. 이모를 말할 때 또박또박 유난히 힘을 줘서 말했다. 술집 여주인들이 단골 관리 차원에서 보내는 스팸 같은 문자라며, 은밀한 것이었으면 지웠지 두었겠느냐며 되레 화를 냈다. 그제야 밑도 끝도 없이 조심하라던 남편 친구의 알 수 없는 귀띔이 떠올랐다.
주부가 가정과 자식을 위해 참아야 하는 것이 전통의 미덕이라던 시대가 정말 저문 것이기는 할까. 남편의 바깥여자를 끄덕이는 것까지가 미덕이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한밤에 그것도 주말 한밤에 걸려온 낯선 여자의 전화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무슨 용기일까. 수신된 번호를 길게 눌렀다.
이번엔 낯선 여자가 먼저 “여보세요” 말했다. 그녀를 부르는 나의 첫마디는 어이없게도 언니였다. “언니, 요즘 세상에 남자 여자 친구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죠. oo아빠 주말에만 집에 와요. 주말에는 가족과 있으니 전화 삼가주세요.” 그러고는 끊었다.
이왕 빼든 칼이니 다 오려내고 싶은 마음에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당신의 술집 이모라는 여자랑 통화했어요. 다시는 전화 걸지 말라고 당장 전화하세요.” 잠결에 깬 남편은 전화기를 받아들고 이맛살을 찌푸린 채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는 전화하지 마.” 한마디 뱉고는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등을 돌렸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대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심정으로 나는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 발등에 떨어져 생채기를 내고 화병으로 남았다. 욱신욱신 온 마음이 아프고 저렸다.
화병이란 삶의 젖은 자리를 말리느라 가슴에 들인 불덩이 아닐까. 그 불이 뜨거워 나는 밤마다 눈물로 가슴을 식혔다. 살도 소각되어 뼈마디에 피부 한 겹만 씌운 듯 앙상하고 차가웠다.
마음은 육체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듯 몸도 아프기 시작했다. 불쑥불쑥 소화불량과 두통이 찾아와선 돌아가질 않았다. 시시때때로 답답한 가슴을 치며 서성이다가도 이내 죽은 듯 자기도 했다. 남편이 내려오는 주말에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태연한 듯 보이려는 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큰일 치르겠다고 병원 가보자는 형님의 손을 한사코 뿌리쳤다. 내 아이들이 엄마의 병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금 당장 곪고 있는 엄마 마음쯤이 무슨 대수겠는가.
그래서 찾게 된 곳이 숲이다. 그러나 산을 오르던 첫날, 여자로서 자존심으로 애써 삼켰던 본심이 튀어 나왔다. 소나무 가지가 하늘을 향해 벌리고 있는 것을 봐도 그녀의 가랑이처럼 보였다. 나무 이파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그녀의 머리채를 쥐어뜯어서 낙엽처럼 흩뿌리는 상상을 했다. ㄴ자로 가지가 뻗은 나무둥치만 봐도 굵은 동아줄을 매어 그녀와 남편의 모가지를 걸어 두고 싶었다.
사랑의 이면이 분노와 절망이라니……. 한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나를 산이 느리게 그러나 매일 달랬다. 옷 솔기 사이를 뚫고 숲이 내 안의 불길을 한 뼘씩 낮추며 청량하게 관통했다. 편백나무 숲 한 쪽 귀퉁이에 깔아놓은 편백나무 조각을 밟으면 어릴 때 금기였던 솜이불을 밟듯 즐겁다. 살포시 마른 웃음이 핀다. 산은 매일 새로운 약손이 되어 상처 난 작은 짐승을 쓰다듬었다. 나는 피해자라고 억울하다고 한 치의 용서도 없다던 마음이 차츰 풀어지기 시작했다. 미동도 없이 버티고 앉은 산은 초록의 향연만으로도 살기 싫다던 사람을 다시 살 밑불을 지폈다.
‘그래. 살아야한다. 살아야한다. 살아야지.’
소나무의 옹이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즈음이다. 소나무 줄기에 상처가 나면 나무는 상처를 감싸기 위해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송진을 분비해서 상처 부위를 감싼다. 불거져 나온 옹이의 돌출부는 나무가 스스로 상처를 치료한 흔적이다. 너도 많이 아팠구나. 나는 오래 상처 자국인 옹이를 어루만졌다.
작은 숲에서 힘을 얻는 나는 점차 더 먼 숲을 찾아다녔다. 울릉도 여행도 그런 숲 찾아가기의 여정이었다.
사방이 바다인 울릉도는 태곳적 원시림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람의 섬이 아닌 자연의 품안이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이며 잎사귀 두툼한 동백나무숲은 시원림 그 자체다. 서걱거리는 처녀림의 숨소리는 가슴도 빗질할 만큼 뼛속까지 청담하다.
화창한 날에도 수십 번 날씨가 변한다는 울릉도 날씨. 내수전전망대를 오르는 동안의 날씨가 그랬다. 언제 맑았었느냐는 듯 해운이 밀려와 금방 아득한 원시로 돌려놓았다. 콘크리트로 무장한 숨 못 쉬는 딱딱한 길만 걷다가 운무 낀 흙길을 만나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걸었다. 단단히 옭아맨 끈을 푼다는 것은 속박에서부터 탈출이기도 하지만 자생하겠다는 의지다. 네모 도시, 네모 길만 걸어 네모진 내가 마가목 숲길을 지나며 몸에 걸치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었다. 바람을 막을 수 없다면 자연스레 통하여 흐르게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임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숲에서 일렁이는 청량한 바람소리에 가슴의 마개가 터지고 마음의 어혈이 풀렸다 옹색하기 이를 데 없던 울화가 어머니 품 속 같은 대자연에서 따스한 모정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숲에 이르러 바람을 벗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