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시루 / 조미정

 

 

옹기가 아이 몸만 하다. 끙끙거리며 비스듬히 눕힌 채 밑동을 살살 굴린다. 잡곡 자루가 빽빽한 창고에서 뒷방 늙은이 신세였다. 오랜만에 목욕 재개하더니 문턱 두 개를 쿵 넘는다. 안방 아랫목에 앉는다. 사람처럼 둥글게 자리 잡고서야 허리를 한번 쭉 편다.

콩나물시루는 한눈에 보기에도 수더분하다. 아가리가 둥글넓적하게 벌어진 고무 대야에 받침목을 놓고 그 위에 구멍 숭숭한 시루를 얹었다. 물 내리는 소리만큼은 이팔청춘이다. 소낙비 듣는 것처럼 후드득거리며 밑으로 빠져나간다. 물받이 자배기는 그 비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을 틈이 없을 텐데 어떻게 콩나물이 자라나 싶다.

콩나물 기르기는 쉬워 보여도 까탈이 많다. 자칫 빛이라도 쬐면 대가리가 파랗게 변해 질겨진다. 행여 아까운 콩 한 톨이라도 버리게 될까 봐 검은 면 보자기를 탁탁 펴서 덮는다. 오며 가며 시선을 던진다, 자다가도 일어나 물 한 바가지 퍼준다. 국수봉 은을암에 올라 받아온 약수 덕분에 물비린내가 나는 법이 없다. 그렇게 밤잠을 설친 정성 덕분인지 콩나물은 며칠이면 한 뼘이나 키가 큰다.

콩나물시루는 어머님이 무척 아끼던 옹기였다. 내가 시집오기 전부터 안방 아랫목에 앉아 아주버님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었다. 밭에 나간 어머님 대신 밥솥에 쌀을 안치던 시누들의 차가운 손을 어루만지고, 터울이 많이 나는 남편의 짓궂은 장난에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봉제사 접빈객이나 네 남매의 사주단자가 오갈 때도 아버님 대신이었다.

오일장이 서면 어머님은 틈틈이 콩나물을 내다 팔았다. 집 앞 골목 끝에 전을 편 모습에 화들짝 놀라 말려도 소용없었다. 단골을 외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가만히 앉아 용돈을 거머쥐는 재미가 쏠쏠해서였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자식 넷을 결혼시킨 것도 모자라 손주들까지 금이야 옥이야 거두어 주셨던 어머님이다. 가마 속 불기도 견뎌낸 콩나물시루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날도 오일장이 선 날이었다. 마지막 독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어머님이 도로 털썩 주저앉았다. 남편이 몰래 서준 빚보증이 사달 났다. 집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어머님은 아들만 감싸고돌았다. 며느리에게는 남편 바가지 긁지 말라고 대뜸 큰소리부터 하셨다. 입 한번 뻥긋 못하고 내 가슴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너무 물을 많이 준 대두 같고 나는 물 한 모금 못 먹은 풀콩 같았다. 그러자 온몸 마디마디 억센 잔뿌리가 뻗기 시작했다.

못난 쪽으로 생각이 쏠리면 마음도 모나기 시작한다. 방금 유산한 며느리 앞에서 딸 미역국만 챙기시던 어머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출산하다가 종양이 발견된 며느리는 뒷전이고 강보에 싸인 첫 손자만 아랫목으로 밀어 넣던 순간도 마음에 사무쳤다. 막 친정어머니를 잃은 내게 제 복이라던 푸념도 심경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뚝 그쳐졌다. ‘마음이 돌아선다.’라는 말을 실감했던 것은 아마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고부간의 불화가 심해졌다. 주말마다 올라가던 시댁으로의 발길이 뚝 멈추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쩔쩔매는 남편을 문전박대 하거나 나도 우리 집의 귀한 딸이라며 엎드려 대성통곡하는 날도 잦아졌다. 서로가 마음의 빗장을 걸었다. 그동안 콩나물시루는 쩍쩍 갈라져 먼지만 뽀얗게 쌓여갔다.

어느 날, 남편이 퇴근길마다 두 손 가득 무엇인가를 들고 왔다. 꾹꾹 눌러 담은 듯 검정 비닐봉지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하얀 콩나물이었다. 토실토실 살이 올라 한눈에도 먹음직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돌부처 같았다. 돌아앉아 묵묵부답일 때도 어머님은 콩나물을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마침내 다시 시댁 문턱을 넘을 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긴장과 어색함으로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어머님은 오랜만에 보는 딸자식 대하듯 살가웠다. “ 고생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물기를 툭툭 털던 이마 위로 무심한 듯 한마디 툭 던지셨다. 매일 새벽마다 정화수 떠 놓고 천수경을 외우던 불심이 떠올랐다. 오매불망 아들만 바라보는 모정에 어찌 그렇게 모질게 반기를 들었단 말인가. 매듭이 풀리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그동안 맺혔던 응어리가 흐물흐물 풀리는 듯했다.

여느 콩과식물과 달리 음지에서 키를 키우는 콩나물이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미처 자라지 못하고 까부라지는 콩이 있다. 뿌리내리고 줄기가 자라는 동안 발산되는 열에너지를 제때 솎아주지 못해서이다. 나도 제 속을 다스리지 못해 저 혼자 까부라졌던 콩 한 알이었다. 갈등 없는 관계란 없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동료이든 사람 사이의 시절 인연은 나고, 자라고, 죽는 게 당연지사다. 하물며 생판 남이던 사람들이 고부로 만나 부대끼다 보면 불협화음인 경우가 부지기수 아닐까. 마음이 달그락거릴 때마다 콩나물 물 내리듯 하면 다시 돈독해지지 않을 일이 없을성싶다.

오늘도 어머님은 콩나물시루에 물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젠 더 이상 섭섭하지 않다. 가끔 울화가 치받을 때는 물 한 바가지 들이붓는다. 방금 내린 물은 왁자그르르 숭숭한 구멍을 빠져나와 물받이 자배기에 가만히 내려앉는다. 두 개의 옹기가 한 몸이 된다. 내 마음에 둥근 파문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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