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 최운숙

 

 

묵이 누웠다. 접시 위에 육면체 바다로 누웠다.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자 잠에서 깬 듯 침묵이 손을 타고 출렁인다. 누군가 잃어버린 꿈처럼 둔중하다.

 

지인이 도토리묵을 가져왔다. 도토리는 씀바귀처럼 쓰고, 빛깔은 숯처럼 검다. 만드는 과정 또한 번거로워 먹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는 만들기 쉽지 않은 음식이다. 아마도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만들었을 묵이 여기까지 건너왔나 보다.

 

어느 해인가 아버지를 따라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 아버지는 나무토막을 잘라 구멍을 내어 자루를 박았다. 쿵쿵, 내리치는 소리가 작은 마을을 지나 앞산 이마에 걸렸다 되돌아왔다. 떡메 소리에 맞춰 엄지손가락만 한 도토리가 와르르 우르르 뛰어내렸다. 한꺼번에 떨어지는 소리는 굵은 우박보다 요란했다. 잽싸게 플라스틱 바가지를 머리에 덮어쓰자 타다다탁 탁탁 바가지 때리는 소리가 따발총 소리 같았다.

 

엄마는 묵을 쑤어 단양주와 내왔다. 단양주는 한 번 빚는 막걸리로 두 번 빚는 이양주나 세 번 빚는 삼양주에 비해 담그기가 까다롭다. 첫 불은 부드러운 불로 지피고, 나중 불은 센불로 지핀다. 시루 위로 수증기가 솟아 나오면 시루 안 고두밥 위에 찬물을 한 바가지 뿌렸다. 고두밥이 지어지면 돗자리를 펴고 차게 식혀 술을 빚었다. 이렇게 술을 빚으면 술지게미가 적고 많은 양의 술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엄마가 내오는 단양주와 묵을 놓고 육자배기 가락으로 겨울을 즐겼다.

 

아버지는 뭍에서 살고자 했으나 섬을 떠나지 않았고, 명창을 꿈꿨으나 소리를 갖지 못했다. 묵 한 사발과 막걸리 한잔을 놓고 퉁겨내던 소리가 오일장이 파할 때까지 낭창거렸다. 아버지의 꿈이 담긴 가락은 묵 한 그릇에 맴돌다 바닷바람과 섞여 흩어졌다. 아버지는 한 번도 고난과 후회라는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그러나 거친 파도가 올 때마다 당신도 모르게 한은 조금씩 쌓여갔을 거다. 막걸리 한잔으로 쓸어내리곤 했지만, 한이라는 것은 또 생겨나서 오히려 그것은 살아가는 힘이 되었을 테다.

 

섬은 참나무 열매보다 우뭇가사리가 더 흔했다. 엄마는 검은색에 가까운 붉은 해초를 따와 민물에 씻은 후 햇볕에 뒤집어가며 말렸다. 열흘 정도 꼬실하게 말리면 까슬까슬한 우뭇가사리가 붉은색을 벗고 누르스름해졌다. 엄마는 말린 우뭇가사리를 광에 저장해두고 사철 묵을 쑤었다.

 

배고픈 시절, 바다에서 나는 걸로 이리저리 음식을 만들다 묵을 만들게 되었다. 우무묵은 여름 햇볕에 핀 소금꽃을 내리는 음식이었고, 콩가루를 넣어 콩국으로 먹으면 든든한 영양식이었으며 자식들에게는 엄마표 밥상이었다. 되직하게 물을 잡아 설탕을 듬뿍 넣어 젤리로 만든 양갱은 내 간식이었다. 얼음같이 투명한 것이 탱글탱글 오돌오돌 입안에 감겼다. 나는 우묵 양갱을 오빠가 육지에서 사 온 과자보다 더 좋아했다.

 

묵은 사람의 희망으로 태어났다. 수십 번 쥐고, 짜고, 걸러, 수장되어 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먹을 것이 풍족해져 가끔은 잊고 살지만, 귀가 순해지기 시작하면 그 슴슴하고 가벼운 맛이 그리워진다. 두 손에 꼭 쥐었던 쓰고 검은 단단한 맛이 우리가 꿈꾸던 희망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손이 많이 가는 이 음식은 엄마의 비손이 담겼다. 사랑을 먹고 자란 우리는 묵을 쑤며 자손의 꿈을 응원한다.

 

목포 수산시장에서 우무묵을 사 왔다. 물결모양 칼로 썰어 베란다 테이블에 놓았다. 눈부신 파란 하늘을 보며 젓가락을 들지 못하는데, 싱겁고 못나고 소박한 것이, 오래전 산으로 거처를 옮긴 아버지를 불러온다. 창문을 통해 가늘고 긴 햇살이 가야금 줄이 되어 묵의 지붕에 내려앉는다. 젓가락으로 툭, 건드리자 묵은 가야금 현이 되어 느리게 흔들린다. 묵 속에 아버지의 가야금이 소리를 탄다.

 

낮달이 보인다. 앞마당을 뛰어다니던 백구처럼 하얀 얼굴로 폴짝폴짝 뛴다. 나는 반쪽인 달을 백구의 꼬리인 양 잡으려고 요리조리 기웃거린다. 달은 없는 꼬리를 살랑대며 자꾸만 오른쪽으로 도망친다. “묵 한 사발 내와라, 노래 한가락 해야겠다!” 무덤에 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화들짝 놀라 환청에서 깨어난다. 묵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전히 육면체 바다다. 나는 그것을 환청이 아니라 늘 마음속에 그리다 문득 일어나는 그리움의 생각인 수감隨感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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