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의 반란 / 여세주

 

 

강아지들이 집을 나가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마당에 똥을 누고 가는 길고양이들을 쫓아내라고 목줄을 풀었는데 임무를 저버리고 무단가출을 한 것이다. 매일 들길을 걸을 때 견인 줄을 채우지 않아도 멀리 이탈하지 않고 잘 따라다니던 녀석들인데 여태껏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배고픔도 잊을 만큼 바깥에 다른 충동이 있는 게 분명하다.

 

문득 짐작 가는 정황 하나가 떠오른다.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아랫마을에 세 마리의 떠돌이 개가 있는데 그중 암컷 한 마리가 발정기를 맞았을 것이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그 암컷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기회가 주어지기를 무한정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전원주택에 오면서 가장 먼저 키운 반려견은 미모 출중한 암캐였다. 지인이 키워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사철나무와 측백나무로 두른 허술한 울타리인데다가 대문도 없는 마당에서 암캐를 키우려다 보니 새끼를 낳으면 어떻게 감당할지가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건 못 할 짓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순결을 지키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키퍼라고 지었다. 발정기 때마다 단속도 했다. 그런데도 어디에서 모여들었는지 근본도 없는 것들이 대문 앞에 몇 날 며칠을 죽치고 앉아 있곤 했다. 우리 집 키퍼가 한 번이라도 쳐다봐 주기를 바라는 듯 다들 애처로운 표정이었다. 키퍼가 잘생기긴 했다. 훤칠한 키에 매끈한 몸매, 말쑥한 면상에 그윽한 눈망울을 지닌 시베리안 허스키였다. 그런 미모를 보고 침 흘리지 않을 수컷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힘센 수컷이라 하더라도 암컷의 동의 없이 짝짓기는 불가능하다. 수컷이 냄새를 맡고 짝짓기를 시도할 때 암컷이 피하면 싫다는 의사 표시다. 수탉처럼 싫다는 암컷을 갑작스럽게 겁탈하는 수캐는 없다. 암컷이 피하지 않고 꼬리를 들어주면 수캐는 비로소 짝짓기를 시도한다. 그런 걸 보면 개는 수탉에 비해 도덕군자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개들은 없을 성싶다.

 

반려견을 여럿 키웠지만 그들의 성적 본능은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진돗개와 비글과 골든 리트리버, 그리고 발바리 종들을 키웠는데 주로 수놈만 골라서 키웠다. 그러니 새끼들을 분양해야 할 수고로움이 없었다. 그런데도 반려견들의 성욕은 무시하고 허용하지 않았다. 거세를 강제하는 폭거는 저지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목줄을 채워 풀어주지 않았기에 반려견들의 성욕을 억압한 것은 사실이다. 성욕은 욕망이 아니라 욕구다. 살아가는 데 없어도 되는 게 아니라 사는 데 꼭 필요한 본능이다.

 

동물들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은 식욕과 성욕이다. 이 둘 가운데 우선하는 욕구가 어느 것인지를 실험한 결과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며칠 굶긴 숫쥐가 먹이통으로 먼저 달려가는지, 암쥐에게 먼저 달려가는지를 실험해 봤더니, 양쪽으로 갈린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개별적으로 다를 뿐이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었다.

 

오늘 우리 집 강아지들은 식욕보다 성욕을 선택하고 있다. 배고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암캐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있을 게 뻔하다. 먹여준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성적 욕구를 무시하고 영어(囹圄)의 신세를 강요한 나에게 강아지들이 항거하며 반란을 일으킨 셈이다. 그러니 강아지들의 가출을 나무랄 수도 없다.

 

그나저나 암컷의 발정기가 끝날 때까지 여러 날 돌아오지 않더라도 두 살짜리 해피는 걱정할 것 없는데, 열다섯 살이나 된 흰둥이가 걱정이다. 해피는 작년에 유기견 보호 센터에서 데려온 녀석인데 시바 이누의 혈통을 쪼끔 이어받은 것 같고, 흰둥이는 이웃집에서 분양해 온 녀석으로 몰티즈 순종이다. 해피는 약삭빠르고 흰둥이는 점잖다. 해피는 힘이 넘쳐서 탈인데, 흰둥이는 근력이 무척 떨어져서 가엾다.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산책할 때도 숨이 차서 가끔 길바닥에 주저앉아 쉬곤 하는 녀석이다.

 

그토록 운신이 불편한 노구를 끌고 어쩌겠다고 암컷을 찾아 먼 길을 행차하였단 말인가. 몰려든 수놈들 가운데 노쇠한 흰둥이가 암컷을 차지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어금니는 다 빠지고 앞니마저 듬성듬성한 데다가 입냄새까지 풍기는 흰둥이에게 암컷이 호의를 보일 리 없다. 설령, 복슬복슬한 흰색 털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매혹되어 암컷이 꼬리를 들어주더라도 기력이 달려 흘레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창피를 어떻게 감당하며 무너진 자존심은 또 어떻게 회복할는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어 기력이 더 쇠진해질까 봐 걱정이다.

 

신체적인 노화로 성기능이 퇴화한다고 해서 성욕도 감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면 금욕을 해야 옳지 않은가. 흰둥이는 그럴 생각이 없는가 보다. 성적 관심을 수치스럽다고 여기지 않는가 보다. 어쩌면 늙은 흰둥이에게도 성욕은 자기 존재감인지 모른다. 성적 본능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감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흰둥이의 성욕이 무궁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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