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의 조화 / 공순해
누가 내 책상을 무덤으로 만들어 놨어! 수업에서 돌아온 그가 외치던 순간, 그 역설적 냉소에 속으로 킥 웃고 말았어. 뜻밖의 외침에 꽃동산 같던 교무실은 순식간에 조화弔花 가득한 묘원墓園으로 변모됐어. 말의 힘이라는 게 그런 걸까. 참 오래전 얘기네.
그는 남도에 뼈 묻고 그림을 그려온 화백의 따님이었어. 남자 형제들까지 모두 그림을 그리는 저명한 집안이라 했지. 그의 담당 과목도 미술. 순환 근무로 도착한 세 번째 학교에서 만난 그의 기인 풍모는 단연 눈길을 끌었어. 그는 꽃을 꺾어 바치는 곳은 무덤이면 족하다고 했어. 점심시간에 주번이 도시락에 ᄄᆞ뜻한 물을 부어 놓아도 또한 버럭 소리 질렀어. 나, 개 아니거든. 물 말은 밥은 개나 먹는 거지. 매우 질색했어.
한데, 같은 미술과 이 선생도 똑같은 말을 했어. 학생들은 관심 있는 선생님 책상에 꽃을 꽂아 놓은 걸로 좋아함을 나타냈는데, 이 선생 말에 의하면 살아 있는 꽃 목을 잘라 꽂아 놓고 바라보는 건 잔인한 일이라고 했어. 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제자리에 피어 있을 때라고, 꽃의 비명이 안 들리느냐고. 그래서 꽃병의 꽃을 보면 슬프다고도 했어.
주번 학생들은 월요일 아침이면 담임 책상에 꽃을 꽂아 두는 걸로 당번 일을 시작했지. 주중에 다른 학생들이 꽃을 가져다 바꾸지 않는 한 그 꽃은 거기에 있게 돼, 책상엔 꽃이 비지 않았지. 꽃이 없는 책상은 미술과의 그 둘 뿐이었어. 그래서 멍때리는 공강空講 시간이면 책상에 놓인 꽃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말을 곱씹어 보게 됐어.
꽃을 꺾는다는 것은 꽃 목을 자르는 일. 딴은 맞는 말이네. 목 자르는 건 생명을 거두는 일, 맞네. 그러면 그간 이 일에 대해 왜 민감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지. 꽃도 생명이라는 인식이 희박했던 건가. 보리도 생명이라고 보리꽃꽂이에 그리 반발했으면서도.
교사 초임 첫해, 한흑구의 〈보리〉로 연구수업을 했을 때 심화 학습 단계 평가에서 교장은 보리로 꽃꽂이도 하는데 이런 생활화 과정이 부족했다고 지적했어. 보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수업한 뒤, 뒤미처 그 목을 잘라 꽃꽂이를 하라고 가르치라고? 아무리 산다는 게 모순이라지만 이분이 제정신인가. 나는 울컥하는 심사가 돼, 보릿고개에 보리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이 있는데 생명을 장식품으로 쓸 생각은 없다고 곧장 대답해버렸어. 그땐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었어. 그 후 두고두고 동료들로부터 질타(?)를 받았지. 그렇게 곧은 소리 해서 교장에게 시달리는 거라고. 수업은 잘하지만 다루기(?) 만만치 않은 교사라는 부전지附箋紙가 붙어 부임하는 학교마다 전달이 된, 고달픈 교사 생활의 시작이 이로 해서 비롯됐지. 너도 알잖아. 내가 그 시절을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그때 이미 보리가 생명임을 자각했으면서도 같은 식물과 꽃의 생명에 대해선 왜 둔감했을까. 보리는 식품이고 꽃은 장식품으로 쓰여서? 그 후 꽃을 선물로 받으면 갈등에 빠지곤 했어. 저걸 생명으로 인식해야 하나, 장식품으로 일주일쯤 즐긴 뒤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시들어가는 꽃에 내 가슴도 시들곤 했어.
그 후 시애틀로 와서 글을 쓰기 시작한 뒤, 꽃다발 받을 기회가 몇 번 더 있었어. 축하해주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소중하게 받지만, 그 처리에 대해선 역시 난감했지. 목 잘리고도 형형한 그 생명이 감당되지 않았어. 살매스런 살로메로 해 죽은 요한의 목이 저랬을까. 전의 미술과 동료들 생각도 났지.
울며 겨자 먹기로 처음엔 그냥 꽃병에 꽂아 놓았지만 필요는 방법을 찾게 한다고 차츰 아이디어를 내게 됐어. 꽃을 말리기로 했지. 동양 철학에선 건조화乾燥花가 음기를 지니고 있기에 생활의 활기에 해가 된다고 해. 그러나 애겐 그 방법이 해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됐어. 일종의 양생養生의 길이라고나 할까.
꽃을 말려 보관을 잘하면 상황에 따라 몇 년도 너끈히 즐길 수 있는 거 알아? 지금도 눈에 보이는, 긴 항아리의 저 붉은 장미꽃은 고교생 큰손자가 파트타임으로 첫 주급을 받았을 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말과 함께 들고 온 꽃. 그 옆 항아리의 분홍장미꽃은 B 선생과 H 선생이 출간 축하로 함께 기뻐해 준 꽃이고, 그 뒤 항아리의 노란 장미꽃은 Y 선생이 수상 축하로 들고 온 꽃이야.
비록 말린 꽃이긴 하지만 그 둘레엔 함께한 즐거움과 이야기가 작은 돌에 부딪치는 시냇물 소리처럼 들릴 듯 말 듯 가늘게 흐르고 있어. 손자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을 때의 놀라움과 감격이라니. 첫 유아어가 ‘이거!’였던, 온갖 의사소통을 지시어 하나로 하던 아이가 자라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일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어. 또 동료들과 나눈 정담과 비 오는 날의 우산 속 정조, 그 주변의 비에 젖고 있는 건물들, 카페의 웅성거림과 커피 냄새까지 아우라를 더해 떠올릴 수 있어. 말린 꽃으로 해서 잠깐씩 함께한 시간으로 돌아가 담소와 소소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고, 말린 시간을 다시 덕셔서 꽃 피울 수도 있어.
하긴 말린 꽃을 보면 가끔씩 옛날 그 동료의 투박한 음성도 들리곤 해. 누가 내 책상을 무덤으로 만들어 왔어! 그러나 그는 조화란 걸 생각해봤을까. 조화調和의 조화 造化. 어우러짐의 조화造化,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되는 조화. 그러고 보니 삶은 이처럼 패러독스라는 칼로 무수히 깎아낸 다이아몬드 같은 결정체가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 그 조화 속을 누가 알랴 싶어 그때처럼 또 킥 웃어보네. 그리고 꽃 한 송이 들고 찾아갈 무덤도 없는 너를 무한 그리워하네. 기억의 힘으로 살아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