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이 커졌다 / 김성진

 

 

여동생 내외가 이사를 한다. 낡은 아파트를 팔고 새 아파트로 간다니 축하해 줄 일이다. 그런데 새 아파트엔 장롱이 붙박이로 있어 쓰던 장롱 처리가 고민이라고 한다. 짠순이 여동생은 흠 하나 없으니, 중고 당근마켓에 올리자 하고, 매제는 남이 쓰던 물건을 누가 쓰겠냐며 폐기물로 버리자고 옥신각신이다. 내가 누구던가, 짠순이 오빠 짠돌이가 아니던가. 30년도 더 된 우리 집 장롱이 떠올랐다. 겉은 벗겨지고, 문짝은 뒤틀려 양쪽 문을 동시에 닫아야만 닫히는 상태다. 얼른 동생네 장롱을 모시고 왔다.

장롱을 교체하고 보니 방 안 분위기가 확 달라져 보인다. 열두 자 빅 사이즈라 한쪽 벽면이 꽉 찬다. 더군다나 광고에서나 보던 유명 제품이다. 아내도 좋은지 흐뭇한 장롱이 커졌다 29 표정이다. 사치를 모르는 알뜰 정신만큼은 찰떡궁합이다.

은퇴하는 장롱을 바라본다. 참 오래된 인연이다. 쉽게 버리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취직하자마자 결혼해야 할 상황이 벌어져, 신혼생활을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자린고비 삶을 살며 5년 만에 내 집을 마련했으나, 살림살이는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 서른 평의 아파트에 살림이라곤 작은 옷장 하나뿐이었다. 살림이 없으니 오십 평처럼 넓어 보인다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기억해 보면 30년쯤 전이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내려갔던 아내가 기가 막힌 것을 발견했다며 허겁지겁 올라왔다.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양 환한 표정이었다. 내려가 보니 누군가 이사하면서 폐기물 딱지 붙여 버린 소파였다. 약간의 사용감은 있었지만, 찢어지거나 낡아 보이진 않았다. 횡재했다는 말은 바로 이런 때 하는 것이리라. 집으로 데려왔다. 창피한 마음도 들었지만, 득템의 기쁨이 더 컸다.

낑낑대며 엘리베이터에서 소파를 내리는데, 현관 앞에 누군가 서 있다. 하필이면 그날 아버지가 오셨다. 폐기물 딱지를 떼어내고 소파를 닦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그렇게 좋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네.”

아버지가 가시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낯선 전화 한 통이 왔다. 가구점이라며 장롱을 배달해야 하는데, 주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단칸방 시절에 쓰던 낡고 작은 옷장이 30 김성진 수필집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장롱을 사 보냈다. 옷장보다 두 배나 컸다. 휑한 집을 둘러보고 마음이 아팠던 모양이다.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아버지는 결혼할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만 하셨다.

그날은 졸지에 예정에도 없던 소파와 장롱이 한꺼번에 생긴 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행동에 후유증이 발생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우리 집을 방문했던 날은 아버지가 부도를 맞아 변호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당시 아버지는 곡물 도매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 소매상에게 대량의 곡물을 납품하고선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우리 집에 들렀는데, 때마침 소파를 주워와 닦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와 의논도 없이 변호사비 계약금으로 준비한 돈으로 가구를 사 보낸 것이다. 대책 없이 돈을 엉뚱한 곳에 쓰고 간 아버지는 그날 어머니와 크게 싸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차피 소송해 봐야 상대가 갚을 능력이 없어 돈을 받기 힘들 것으로 생각하고, 차라리 그 돈으로 아들 살림이나 보태주자며 마음을 바꾼 것이다. 부도낸 사람에게선 돈을 버는 대로 갚겠다는 각서를 받았지만, 끝내 받지는 못했다.

세월이 흘러 그동안 이사는 몇 번 했지만, 우리 집 문화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집안의 살림은 중고 시장에서 산 것이거나 누군가 필요 없는 물건을 얻어온 게 대부분이다. 장롱이 커졌다 31 작은방엔 여전히 30년 넘은 서랍장이 자리 잡고 있고, 자동차는 10년이나 된 중고를 사서 7년째 타고 있으니 17년이나 된 것이다. 침대는 처남이 새 침대를 넣으면서 버리는 것을 데려왔다. 모두 원래 제자리인 양 편하게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가 왜 이렇게 궁상맞게 사느냐고 물을 때면, 뭐 천성이 그런데 어쩌겠냐고 웃고 만다.

장롱에 폐기물 딱지를 붙이는데, 가슴이 저려온다. 30년 만에 떠나보내는 장롱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물건이다. 이제는 그 사랑을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욕심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던 아버지, 꿈과 포부가 컸던 어머니. 너무 달라 늘 부딪혔던 두 사람, 돌아보면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지, 사랑하는 마음이 달랐던 건 아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꿈에서도 잘 오시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좀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래도 오늘은 두 분 모두 기뻐하실 것 같다. 딸은 새집으로 이사하고, 아들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12자 메이커 장롱이 생겼으니까.

이제금 내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당신의 손자가 장가를 간다고 한다.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보태줄 게 없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 내 모습이 그때의 아버지와 하나도 다른 게 없다. 장롱을 내놓으며 아버지를 그려본다.

“아버지, 우리 집 그래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장롱이 또 커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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