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걸 좋아하거든요 / 장미숙
사회자의 호명에 귀가 번쩍 뜨였다. 여유롭게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불똥이 튀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댕댕, 갑자기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재빨리 산타클로스 모자를 뒤집어썼다. 의자 사이를 뛰어가다가 꼬꾸라질 뻔했다. 무대로 나갔으나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분명 우리 순서가 아니었다. 다섯 번째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어찌 된 것일까. 아들 친구인 사회자가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순서를 바꿔버렸단다. 마음의 준비도 못 했는데 이런.
일단 나왔으니 시작해야 했다. 무대 정면 스크린에 연습했던 영상이 나오고 있었으나 볼 틈이 없었다. 당황한 나머지 첫 박자를 살짝 놓쳤다. 그걸 만회하려고 동작을 과장했다. 갑자기 좌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앞에 앉은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지는 걸 보고서야 휴,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음악은 연습 때보다 빠른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공연은 끝나고 등에서는 땀이 솟았다.
사람들의 갈채가 쏟아졌다. 아들이 맨 뒤에서 벙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사회자의 너스레가 이어졌다. 20대보다 더 빠르고 날렵하다나 뭐라나.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시원하면서도 섭섭했다. 화장실 앞에서 아들을 만났다. 엄지손을 치켜세웠다. “잘했어.” “괜찮았니?” “어. 잘하던데.” 그거면 됐다. 연습 때보다 못한 것 같아 아쉬웠는데 아들의 한마디에 위로가 되었다.
어쨌든 끝났다. 한 달 정도 연습한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데 만족했다. 두 번째 공연은 어려운 동작이 아니어서 가뿐했다. 더불어 2등으로 상금까지 받았다. 만족스럽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성탄절 전야축제를 위해 공연을 준비한 건 한 달 전이었다. 당연한 듯 사람들이 내게 기대를 모았다.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흔쾌히 응했다.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움직이는 걸 좋아한 데서 비롯되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부터 에어로빅을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스텝이나 박자감을 익히는 게 재미있었다. 오십 대 중반까지 꾸준하게 이어졌다. 잘하진 못해도 몸치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주민자치센터 운동 프로그램이 중단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다. 밖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서 달리기와 배드민턴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꾸 몸이 음악을 쫓아다녔다. 공원 배드민턴장에서 라켓을 휘두를 때도 막춤 삼매경에 빠졌다. 근처에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음악이 나오면 흔들어댔다. 친구들과 함께여서 나름 즐기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찬양시간이 되었는데 청년들이 워십 댄스라는 걸 했다. 경쾌한 찬양에 맞춰 간단한 율동을 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이 앞에서 인도하면 남녀노소 따라 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였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이후 찬양시간이 즐거웠다. 어떤 날은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성탄절을 한 달 앞두고 장기자랑이 있다고 했다. 찬양 댄스를 하자는 사람들의 권유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두 번의 공연을 준비했다. 한번은 세 사람과 약간 어려운 동작을 맞췄다. 다른 하나는 간단한 율동의 워십 찬양이었다. 틈틈이 집에서 연습했다. 내게는 비교적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과 동작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이미 율동하고는 먼 사람들은 기본 스텝도 어려워해 연습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엇박자에 동작을 맞추는 그들을 보며 이십여 년 전 일을 떠올렸다.
사십 대 초반,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일 년간 주부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그곳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규과정을 마치지 못한 주부들이 뒤늦게 공부하러 나오는 곳이었다. 당시 우리 반은 30명이었는데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렸다.
일 년 동안 왕복 한 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했다. 교문도 없는 학교였지만 봄 소풍과 가을 소풍이 있었다. 그때에는 학생들답지 않게 버스에서 음주와 가무도 즐겼다. 그리고 12월이 되었다. 송년회가 있다며 담임은 장기자랑을 준비하라고 했다. 당시에도 에어로빅을 배우던 나는 반원들의 추천으로 안무를 지도하게 되었다. 총 열 명이 팀을 이뤄 박진영의 ‘허니’ 댄스를 연습했다.
쉬는 시간이면 학교 옥상에서 동작을 맞췄다. 이미 몸이 굳어버린 아줌마들의 춤사위란 매시간 개그콘서트가 따로 없었다. 웃다가 끝날 판이었다. 한 동작을 알려주면 다음 날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알려주느라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도 열정만은 대단했다.
우리는 반짝이 의상을 준비했다. 게다가 처음에 질색하던 담임 선생님까지 합세하자 의욕은 배가 되었다. 송년회 당일, 2백여 명이나 되는 전교생이 강당에 모였다. 살짝 긴장되었다. 어떤 언니들은 떨린다며 술을 한 잔씩 마시기도 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오고 무대로 나갔다. 맨 앞줄에 선 나는 손에 땀이 나는 걸 애써 태연한 척하며 음악에만 마음을 집중했다.
어떻게 공연이 끝났는지 모르겠다. 환호에 놀랐고 박수 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우리는 당당히 1등을 하고 언니들은 공을 모두 내게 돌렸다. 공부하며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것보다 더 뿌듯했다. 사람들 앞에서 보인 첫 공연에 대한 성공은 졸업할 때까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게 이십 년 전 일이다. 그때의 동작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성탄절 전야제 축제에도 흔쾌히 응할 수 있었다. 전야제 다음날 교회에 갔더니 사람들이 하나같이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한없이 어설펐는데 그들은 내 열정을 본 모양이었다. 나로서도 뜻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이 예순에 어디서 그런 경험을 할 것인가. 미숙함을 좋게 보아주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덕분에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년을 기약하자는 말에 나는 긍정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에세이포레』, 2025년 겨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