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op.37b) / 정은실
창문만 열면 오색찬란한 빛깔이 완연한 가을이다. 지난 3년 간 계절이 오고 가는 모습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던 탓인지 느린 걸음으로 가만히 다가오는 가을이 마냥 기다려진다. 마치 몇 년 만에 맞는 손님처럼 반가운 마음으로 창문 너머의 가을 앞에 우뚝 섰다. 여름의 아우성을 뒤로 하고 쪽빛 하늘과 점점 붉어져 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다 보니 우리 마음까지도 물 들어간다. 이렇게 가을은 우리 앞에 성큼 와서 보란듯이 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옛부터 가을은 책 읽기에 좋은 계절로 알고 있지만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클래식음악을 듣기에 가을보다 더 아름다운 계절도 드물다. 그래서 가을에는 많은 콘서트나 음악제 등이 열리곤 한다. 언젠가 지인이 가을을 나타내기에 좋은 클래식음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이 왔다. 가을 음악의 대표격으로는 역시 비발디 사계 중 가을을 결코 지나칠 수 없다. 또한 이만큼 가을을 나타내기에 알맞는 음률과 배경이 깔린 음악도 드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콧노래로 흥얼거릴 정도로 만인에게 알려진 음률이다. 그런데 너무 많이 들은 탓인지 어쩐지 명랑하고 발랄한 음률이다. 가을이라면 우수에 젖고 고독과 함께 방황하는 영혼을 느껴야 하는데 비발디의 가을에서는 그런 느낌이 별로 없다. 그래서 고른 곡이 차이코프스키의 10월, 가을의 노래다. 가을을 충분히 만끽하고 가을 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곡이다.
사계는 비발디 뿐 아니라 헨델의 오라토리오 사계, 글라주노프의 발레모음곡 사계, 아르헨티나 작곡가 피아졸라의 사계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사계가 다른 작곡가들의 사계와 크게 다른 점은 우선 차이코프스키의 곡은 12곡의 피아노 곡으로 사계절이 아니라 1월부터 12월까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 달에 맞게 러시아 시인의 시가 붙여져 있고 음악잡지 누벨리스크에 게재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에는 그 시절 대문호인 푸시킨이나 톨스토이의 시도 실려있다. 열 두곡 중에서도 6월의 뱃노래와 10월의 가을의 노래는 따로 떼어서 독립된 곡으로 연주할 정도로 유명세가 있는 곡이다. 특히 가을의 노래는 시작부터 쓸쓸함, 황량함과 함께 가을의 우수가 듬뿍 담긴 곡으로 차이코프스키를 나타내기에 꼭 알맞는 곡이 될 수 있다. 10월, 가을의 노래에 붙여진 시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시로 “가을, 우리의 아련한 뜰은 초라해져가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가네.” 이 짧은 한 소절이 우수에 젖은 가을의 황량함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곡의 시작부터 러시아의 우수가 가을과 함께 진하게 묻어나온다. 어떤 작곡가의 곡과도 비교가 안 될만큼 가을의 정취를 흠뻑 담고 있는 곡이다. 자세히 듣다보면 어떤 부분은 슈만의 곡에서 풍겨지는 음색도 보이지만 역시 러시아 특유의 애수를 따라 갈 수 없다. 원래는 피아노 곡으로 만들었지만 후에 많은 작곡가들이 관현악 곡으로 편곡해서 연주되기도 하는 곡이다. 마치 지난 날을 회상하는 듯한 음률에서 우리는 지나간 계절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의 청춘과 우리의 추억들을 소환해서 꺼내어본다. 6-7 분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곡에서 우리는 어머니를 그리고, 우리의 유년을 반추하며 한참 열정을 다해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의 젊었을 때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가을이 된 것 처럼, 모든 만물이 조용해지는 이 계절에 우리도 우리 자신 속에 침잠하며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된다. 이제껏 살아 온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앞으로 살아내야 할 것에 대한 감사다.
성큼 다가온 이 가을에 진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가을의 노래를 듣는다면 이보다 더 큰 사치는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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