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감 / 김순경

 

 

물때가 소리 없이 쌓인다. 뱉으려고 애를 쓸수록 더 깊이 박힌다. 삶이 불러오는 설움과 눈물이 단단하게 자리 잡으면 숨을 쉴 수조차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토해낼 수 없는 되새김질에 가슴이 무너져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은 저마다 옹이 같은 응어리를 하나쯤 품고 산다.

갯벌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존재한다. 끊임없이 넘나드는 해수의 풍부한 유기물이 생명의 원천이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오염물을 걸러내는 천연 정화조이자 콩팥인 개펄은 누구도 내치지 않는다. 반죽처럼 질척거리고 냄새나는 개흙이지만 쉴새 없이 찾아들고 떠나간다. 철새들의 낙원이자 지구의 허파인 펄밭은 포효하듯 무섭게 몰려오는 큰 파도마저 다독이고 어루만진다.

조개도 진흙밭이 삶의 터전이다. 틈만 나면 개흙 속을 들락거리는 게나 낙지처럼 행위 예술가이기도 하다. 집게발로 점을 찍는 게가 거품을 물고 지나가면 갯지렁이가 온몸으로 선을 긋고 낙지가 가늘고 긴 발로 덧칠하자 느리고 굼뜬 조개가 굵고 진한 선으로 마무리 짓는다. 아무리 잘 그린 그림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밀물과 썰물이 새로운 화폭을 만든다. 냄새나고 질척거리는 펄은 생활의 기반이자 꿈을 펼치는 만다라다.

열대 지방에는 강이나 호수에도 사람이 산다. 심지어 물 위에다 밭을 만들고 각종 채소도 키운다. 비가 샐 것같이 얼기설기 지어놓은 집, 여차하면 물에 빠질 것 같은 불안한 계단, 생활 오수가 버려진 강물에서 멱을 감고 그 물을 길어다 밥을 짓는다. 물 위에서 사는 것이 불안하고 위험해 보여도 정작 이곳은 평화롭기만 하다. 펄밭에 적응한 조개처럼 독충과 뱀, 무더위가 없는 수상가옥이 최고의 보금자리라 여긴다.

진흙밭은 치열한 생존 경쟁의 결전장이다. 보기에는 조용해도 늘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천적을 피해 각자도생한다. 개골창이나 논바닥에서 흙을 들이키고 내뱉기를 반복하는 미꾸라지처럼 검은 해감이 쌓이는 줄도 모르고 쉴새 없이 입을 뻐끔거린다. 안다고 한들 별다른 방법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석탄을 캐는 광부가 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살다 보면 흘러 흘러 탄광촌에 도달하고 숨이 막히는 지하 갱도에서 석탄가루를 마신다. 속이 검게 변하는 줄 알면서도 삼겹살과 소주 한잔에 시름을 달래며 다시 수백 미터 지하 갱도로 들어간다.

조개도 틈만 나면 찌꺼기를 게워낸다. 마스크에다 수건까지 덧대도 진폐증에 시달리는 광부가 되지 않겠다며 거품을 문다. 어쩌다 예리한 모래나 이물질이 살에 박히면 죽음보다 더한 괴로움을 당한다. 한번 속살을 파고들면 온몸으로 뒹굴고 입안을 헹궈도 소용이 없다. 스스로 체액을 분비하며 통증을 이겨내야 한다. 진통제 같은 체액이 만들어낸 진주는 조개의 눈물이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어린 조개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끝이 날카로운 모래를 집어넣는다. 수도자의 몸에서 나오는 사리처럼 죽어야 사라지는 아픔의 상징이지만 누구에게는 하나의 장식품이 된다. 조개 양식장마다 절규하듯 통증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메아리쳐도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황도 진주와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청심환은 담석증에 걸린 소가 통증을 이겨낸 산물이다. 사람은 쓸개에 문제가 생기면 앓아눕지만, 소는 성질이 거칠고 포악해져 담석을 토해낸다. 특이하고 다양한 성분으로 만든 우황청심환은 해열 진통제와 강심제로 값비싸게 팔린다. 흑산도산 홍어를 최고라고 하듯 우황도 국산이 으뜸이지만, 그중에도 소가 딸꾹질하다 뱉어낸 생황이 가장 귀하다고 한다. 생황을 구해오라는 어명에 수백 마리 소가 죽어 나간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조개는 물고기를 부러워했다. 자유롭게 떠다니며 마음껏 세상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연어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파도를 타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큰마음 먹고 썰물을 따라나서도 밀물이 닥치면 바로 제자리로 밀려왔다. 물에 뜨는 부레와 균형을 잡고 헤엄치는 지느러미도 없고 좌우로 흔들며 속도를 조절하는 꼬리가 없어 서너 발도 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평생 바닥을 기다 보니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한 귀족이나 상류층쯤으로 생각했다.

물고기도 편치는 않다. 흘러가는 해류를 따라 쉴 새 없이 헤엄을 쳐야 살아남는다. 조개같이 바닥에서 쉴 수도 없고 거북이가 되어 뭍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수많은 목숨앗이가 우글거리는 물속에서는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바로 포식자의 먹이가 된다. 잠잘 때조차 눈을 감지 못하는 치열한 일상이 반복되는 그곳은 진흙밭보다 훨씬 힘들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삶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워도 그냥 참고 견딘다.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구름을 따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지만 몸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철새나 물고기같이 먹이를 찾아다니거나 거친 해류를 따라갈 수도 없다. 논밭전지가 많지 않아도 한번 뿌리 내리면 습관처럼 주변을 맴돌며 살아간다. 등이 굽고 뼈마디가 굳어가도 쌓여가는 해감을 토악질하듯 게워내며 생명을 이어간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씻을 수 없는 업장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간다. 날마다 더해가는 갖가지 번민 속에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덩어리가 되고 굳은살이 되어가도 대놓고 통곡조차 하기 어렵다. 뜨거운 기운이 목젖을 타고 치솟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지만 어르고 달래며 눌러둔다. 삶의 해감은 숨이 멎는 순간까지 굳은살이 되어 가슴에 남는다. 모두가 옹이처럼 굳어가는 아픈 상처를 자신의 체액으로 치유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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