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문을 나서 계단을 내려오다 층계참에서 걸음을 멈춘다. 귀청을 맴도는 의사의 말 속에서 그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이건 비문증飛蚊症이라고 하지요. 눈을 많이 쓰면 나타나는 날파리 증세입니다. 안약을 넣어도 별 효과가 없을 게요. 그대로 사십시오, 완치가 어려우니. 큰 병원에 가면 수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과 의사는 처방이 없다 하면서도 애매한 결론을 내린다. 의사의 말 속에서 날아오른 날파리가 그동안 가뭇없이 사라졌던 그 새를 불러들인 것이다.
옛적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 고샅 들머리에는 술만 취하면 동네방네 왜장치는 봉수양반네 집이 있었다. 그 집 토담 안엔 키가 큰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가을이면 여문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맺곤 했다. 그 감은 보기에도 장히 탐스러웠지만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여 내남없이 군침을 흘리면서도, 봉수 양반의 그 고약한 성깔 때문에 누구든 감히 근접하기를 꺼렸다. 사소한 일에도 동티를 만들어 드잡이질을 일삼는 그와 대적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오후부터 시작하는 이부제 수업을 마치고 시오 리 길을 걸어오느라 배가 무척 허출하던 날이었다. 동구에 있는 당산나무 곁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려니 그날따라 유난히 봉수 양반네 단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추수철이라서 동네는 한적하고 인적이 뜸해 단감에 대한 눈독을 더 부추겼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토담을 기어 올라갔다. 달큼한 단감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입맛을 다시며 늘어진 가지를 당겨서 주먹만 한 감 하나를 손에 쥐고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허공에 검은 그늘이 드리워지는가 싶더니 무언가가 퍼덕퍼덕 소리를 내며 위로 솟구쳤다. 혼비백산, 가지를 놓치며 토담에서 미끄러져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감나무 우듬지에서 몸집이 메추리만 한 큰 새 한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푸드덕 날아올랐다. 벗겨진 신발조차 챙겨들지 못한 채,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냅다 달려 우리 집 골방으로 뛰어들었다. 한참 후, 정신을 수습하고 생각해 보니 그 새도 잘 익은 과육을 알고 나보다 먼저 파먹고 있었나 보다.
그날의 검은 물체는 어깨와 배, 등까지 금속성의 검은 광택이 나는 새였다. 지금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다. 그래서 실제보다 더 크게 보였을는지도 모른다. 그 검은 새는 며칠 동안 어린 내 의식 속을 떠다니며 죽순처럼 쑥쑥 자라더니, 어느 때부턴가 암암하게 가물거리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이 날파리는 달포가 지나도 사라지기는커녕 외려 눈앞에서 점점 더 선연히 알짱거린다. 하루살이 같은 검은 물체 하나. 병원에 가기 전엔 일시적 증세거니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길 어떤 이는 망막에 손상이 와서 그렇다고 하고, 다른 이는 당뇨병이 원인이라고 알은 체를 했다. 혹시 소갈이 생긴 건가 하여 병원에 가보았지만 검사 결과 그도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하였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 검은 물체는 사라지지 않고 눈앞에서 맴돌았다.
어쩌면 어릴 적 그 검은 새는 온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동안 의식의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던 내 비양심의 투사였는지도 모른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의식 속으로 날아오른 검은 새가 어찌 그 한 마리뿐이었겠는가. 교만과 이기, 오만과 욕망 등 생에서 삿된 무수한 새가 날아올랐겠지만 무디어진 감각과 흐려진 영혼 때문에 보지 못했거나, 보았더라도 모른 체 했을 것이다. 더러 생의 방편이라는 이유로 합리화하거나 묻어두고 살아왔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검은 새가 그날의 혼비백산을 깨우쳐 주려고 날파리가 되어 내 눈에 들보로 들앉았는지도 모른다.
소용없다니 안약 넣을 필요도 없겠고, 수술할 필요는 더욱 없겠다. 다시 찾아온 검은 새가 날파리로 떠올라 망막에서 내 속 뜰을 짯짯이 엿보고 있다고 여기면 될 테니까. 욕심의 거울에 비춰 보면 산지사방이 봉수 양반에 단감인 세상, 가슴속에 산뜻한 꽃 한 송이는 아닐지라도, 눈 속에 날파리라도 한 마리 키우는 일이 그리 나쁠 성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