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 김백윤

 

 

회색빛 하늘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바람을 일으켰나 보다. 하늘 옷깃 사이로 하나둘,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겨울의 색은 단조롭고 단호하다. 그래서인지 원색을 감춘 무채색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밋밋한 겨울 바탕에 우직한 나무 하나 우뚝 솟아 있다. 맨살에 닿는 냉기가 몸속으로 파고드는지 바람이 휘돌아 나갈 때면 살짝 움츠리는 것도 같다.

한두 해이런가. 매년 같은 모습으로 사계절을 견뎌온 나무이다. 아니, 완전히 다른 형태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겨울, 나무의 본모습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계절이니 어쩌면 다른 풍경은 상상 이외의 영역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겨울을 오롯이 견디는 나무는 수행자를 떠오르게 한다. 견딤의 본체를 여지없이 보여주니 말이다.

팽나무는 마을 중심에 자리하는 대들보나 다름없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이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벗이기도, 휴식을 제공하는 쉼터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버팀목 같은 존재다.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해져 있다. 나무가 빠진 풍경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마을의 오랜 역사와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보아온 산증인이다.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을 자신의 나이테에 켜켜이 새겼을 것이다. 작게는 지나는 사람들의 면면까지 기억하고 있을 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허공에 자잘한 가지를 펼친 채 온전히 한 계절을 견디는 품새가 의연하다. 커다란 줄기에 새겨진 숱한 상처들이 나무의 영혼을 더욱 빛나게 한다. 품이 넓어 집집에서 일어난 사연들까지 도닥이는 데 모자람이 없음을 새삼 알겠다.

제주에는 팽나무가 많다. 제주 방언으로는 ‘폭낭’이라고 하는데 이는 포구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뜻이기도 하고 가지 사이의 폭이 넓어서 그렇게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주의 마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친근한 품종이다. 팽나무는 신목이자, 제주 정신의 상징으로 일컬어질 만큼 우람한 거목이 많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의 힘을 믿고 의지했다. 아니 어쩌면 약한 인간이 뭔가에 의지하고자 의미를 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어른들은 큰 나무를 보면 신이 깃들었다고 확신했다. 나무를 보호하고 치성을 드리며 의지하는 이유였다. 잘못 건드리면 화가 생긴다는 믿음이 있어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신성시함으로써 마을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팽나무의 밑둥치와 굵은 가지는 두꺼운 옹이가 많아 거칠고 투박하다. 부러지고 잘린 자리에 새살이 돋으며 생긴 세월의 훈장이다.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울퉁불퉁 구부러진 채 숱한 세월을 참고 견디는 모습이 제주 사람을 닮았다. 여름이면 쉼 없이 몰아치는 태풍에도 끈덕진 의지로 중심을 잃지 않았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서 삶을 이어 나가는 제주인의 끈기처럼 나무 또한, 모진 풍파에 맞섰다. 그 결과 지금은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푸른 잎을 달지 않고도 가지는 거침없이 허공을 지휘한다. 무수한 잔가지들이 하늘을 움켜쥐고 있다. 팽나무는 젖은 땅과 마른 땅의 경계에 주로 산다. 마을 어귀나 중심에서 당산나무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해안지역에 더욱 흔하게 볼 수 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성한 공간인 당집 주변에도 많이 서식한다. 팽나무의 수명이 500여 년이라고 하니 나무 중에서도 장수 종에 속한다.

속명 셀티스(Celtis)는 고대 히랍어로 '열매가 맛있는 나무'란 뜻이다. 열매가 달콤하여 새들을 불러들인다. 팽나무 열매는 똘망똘망 노랗게 익어가는데 그 맛이 매우 좋다. 내가 어렸을 적엔 팽나무 주위에 늘 마을 사람들이 붐볐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접하기 힘들었다. 오직 팽나무 주변에서만 각종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니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동네 아이들이 온갖 놀이를 하며 놀았던 곳도 나무 아래였다. 모든 것이 이곳에서부터 이루어지고 끌을 맺었다. 밤늦도록 떠들썩하게 놀다 보면 옆집 주인이 시끄럽다고 지청구를 주었다.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지금은 놀이가 많아진 만큼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찾지 않는 쓸쓸한 곳이 되고 말았다.

우리의 삶이 변하면서 급속하게 자리 잡은 개인주의도 나무를 외롭게 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돌담 너머로 먹을거리가 오가던 정겨움이 자취를 감추면서 인정은 메말라갔다. 밭일은 물론 애경사까지도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던 시대의 따사로움은 이제 추억의 한 자락으로 사라졌다. 요즘은 대가에 따라 움직이니 더는 아름다운 제주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예전에는 팽나무가 있는 곳에서 호수와 바다 건너 우도까지 보였다. 그러던 것이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자 시야도 막혀버렸다.

수도가 처음 들어오던 날 수돗물을 맨 처음 맛본 건 높은 어른이 아닌 팽나무였다. 마을 회의도 이곳을 이용했을 정도로 친숙한 장소였다. 지금은 지나가는 나그네나 잠깐 쉬었다 갈 뿐 사계절 쓸쓸한 그늘만 드리우고 있다. 나무를 빙빙 돌며 놀던 예전의 아이들은 칠순을 넘겼고 그때 어른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나무는 아직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의 말소리를 기억하고 마을의 행사를 가슴에 품은 채 묵묵하게 서 있다. 시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어쩌면 추억이란 기억하는 자의 영역에 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고 청년도 손으로 꼽을 정도다. 일손을 놓아버린 나이 든 어른들이 대부분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변해가는 주변을 바라보며 팽나무는 무슨 생각을 할까. 바람만이 그 속을 알 터, 우직한 나무는 오늘도 마을의 한가운데서 인간의 삶을 담담히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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