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장 / 문혜영

 

 

게를 보면 게장사 생각이 나서 웃을 때가 있다. 옛날 어느 멍청한 사람이 게장사를 시작했는데, 워낙 머리가 아둔한지라 한 번 가르쳐 준 이름은 잊어버리기 예사였다. 게를 한 짐 받아내어 짊어지고 가면서 그 이름을 잊을까 봐 뇌이고 또 뇌이며 걸었다. 냇물을 건너면서도 너무 골똘히 '게'라는 이름만 뇌이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질 뻔한 게장사.

"어이구, 나 죽겠네."

놀라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여태껏 외웠던 이름을 잊고 말았다. 해 떨어지기 전에 팔긴 팔아야겠는데, 도무지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조바심이 난 멍청이 궁리를 낸다는 것이,

" 옳지 이놈 거동을 좀 보자."

지게를 벗고 상자 속에서 버스럭거리는 것들의 거동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그래도 그 버스럭거리는 것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자, 멍청이 할 수 없이 목청껏 외쳤다.

"大足은 二足이요, 小足은 八足이요, 眼目은 上天 하고, 거품은 버글버글, 옆으로 실실인 것 사아려-- "

고향이 원산이신 친정어머니는 게 요리를 매우 좋아하신다. 특히 입맛을 잃게 되는 봄철에는 어김없이 게장을 담그셨다. 어머니가 담그시는 게장은 싱싱한 게를 양파 서너 쪽과 함께 간장에 절이는 것인데, 그 짭짜름한 게 다리 한쪽으로 나는 밥 한 공기를 다 먹곤 하였다.

어머니는 게장을 좋아하는 나에게 종종 게장 담그는 법을 일러주셨다. 그러나 직접 담가볼 생각은 못 하고, 해마다 어머니가 담가주시는 것만을 기대했다. 게장은 반드시 살아있는 게로 담가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매주 금요일이면 아파트 마당에 수산물 차가 온다. 싱싱한 생선들을 단지 내 상가보다 조금 싸게 팔고 있어서 수산물 차가 오는 날이면 이것저것 많이 사게 된다. 나는 널려있는 생선들을 훑어보다가 활개 치며 움직이는 게에 마음이 쏠렸다. 문득 게장 생각이 나서 얼결에 게를 여섯 마리나 샀다.

"뭐 할 거예요?"

"게장이요."

게장을 담글 거라고 하니까 아저씨는 아무런 손질도 안 하고 살아있는 게들을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담아서 건네준다. 봉지 안에서 버스럭 버스럭하는 게를 보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일러주시던 말이 어디론가 다 달아나고 난감한 느낌만 들었다.

"아저씨, 이거 어떻게 해요?"

잔뜩 겁을 먹고 비닐봉지를 엉거주춤 들고 있는 내가 멍청한 게장사만큼이나 바보스러워 보였는지 아저씨는 실실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냥 가지고 가서 아이들 보고 몇 시간 갖고 놀라고 하면 말이죠, 비실비실해지거든요, 그러면 씻어서 딱지 떼고 털도 뜯어내고 담그면 되지 뭘 그래요."

아저씨의 말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쉽게 들렸다. 그러나 난 아이들에게 게를 갖고 놀라고 내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날은 왠지 더 분주했다. 게를 그대로 바구니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 외출을 했었고,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다 재운 뒤에야 냉장고에서 게를 꺼내었다. 게를 사 오긴 했지만 역시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게는 참 끈질긴 생명을 지닌 것 같다. 냉장고에서 하루 종일 있었는데도 여전히 살았다고 부스럭거린다. 나는 그 끈질긴 목숨을 다루는 일에 점점 더 자신을 잃고 있었다. 공연히 게장을 만들려고 했다고 후회를 하며 물속에 게를 쏟아 넣었다. 그러자 잠잠하게 있던 녀석들까지 아우성이다.

수돗물에서는 오래 견딜 수 없겠지 싶었다. 정말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톱밥을 게워내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이제 됐구나 생각하며 작은 게 한 마리를 살그머니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게가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단단히 긴장하고 있는 게의 몸체가 딱딱한 껍질로부터 느껴졌던 것이다. 내친김에 게의 딱지를 떼어 내려고 손가락 끝에 힘을 주는 순간, 아! 게의 다리가 내 손 등을 툭 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겁을 해서 들고 있던 게를 물속으로 던져 버렸다.

강아지나 병아리도 만지지 못하는 숙맥이 살아있는 게를 만지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에 골목으로 빠져나온 병아리 한 마리를 잡았다가 그 뭉클한 느낌에 놀라 손을 놓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체온을 지닌 것이든 아니든 간에 꿈틀거리는 생명체는 왜 이렇게 소스라치게 하는지-

피곤하다고 먼저 자리에 든 남편에게 도움을 청해보았다.

"그런 건 나도 못하는데-"

"그럼 어떻게 하지?"

"그냥 내버리면 안 될까?"

잠에 취해 있기도 했지만, 게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미련 없이 버리라고 한다. 결국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나서야 그 일을 해냈다. 한 마리씩 손질할 때마다 전율을 느껴서 비명을 질러댔다. 마지막 여섯 마리째는 너무 기진해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한밤중에 홀로 진저리를 치면서 게장을 담그고 있으려니까 큰 이모님 생각이 났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이다. 그 이모님은 처녀시절, 바닷가에서 게를 잡던 재미를 잊지 못하고 계셨다. 팔순을 넘기시며 기억력이 흐려지고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시던 이모님이었는데, 어린 시절의 일들은 너무나 생생히 기억나시는지 여러 번 반복해 들려주셨다.

이모님과 어머님, 그리고 나의 고향이기도 한 원산, 명사십리 해당화며, 두남리, 갈마반도…. 너무 많이 들어서 가보지 않았어도 눈앞에 그려지는 그 바닷가. 게는 새벽녘에 잡는다고 하셨다. 사위어 가는 달빛에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자맥질하며 게를 잡아 올렸다는 이모님.

그 시절을 회상할 때의 이모님 얼굴은 곱게 느껴졌었다. 그 꿈같은 시절을 앗아간 것이 무엇일까. 망향의 서러움 말고도 한스런 응어리가 너무 많았던 이모님의 생애. 전쟁이 아니었다면 원산 앞 바다에서 게를 잡으시며 여한이 없는 생애를 사시다 가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머니가 게장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이유는 그 짭짜름한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두고 온 고향의 바다 내음을 그 짭짤한 게장에서 맛보시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신만고로 힘들게 담근 게장을 식탁에 올려놓으니 딸아이가 좋아한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딸아이, 식성은 모계의 내력을 따르는 것인지…. 알맞게 맛이 든 게 다리를 자근자근 씹고 있으려니, 눈부신 명사십리 모래 위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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