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 내 자의식의 인큐베이터 김승희 

 

 

  이제 나에게 독방이 생겼다. 자기만의 독방이 생긴다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독방이란 인간에게 자기만의 응급실이고 고해실이고 또한 분장실이 될 수 있다. 뇌출혈- 그리고 어떤 뇌출혈이 줄기차게 그 방 속에선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 집은 비교적 새로 지은 한옥이었는데 안채의 끝방이 내 방으로 정해졌다. 소녀다운 분위기가 흘러 넘쳐야 할 그 방엔 그러나 흉측한 관념덩어리와 애매한 분노와 치열한 의지의 진폭들이 퇴폐적으로 술병처럼 뒹굴었다.

  나는 동굴을 원했다. 미개한 짐승들이 상처받은 몸을 숨기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 같은 그런 동굴을 원했다. 침묵과 어둠이 수혈의 피처럼 가득 찬 동굴. 어떤 새로운 태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살과 피를 받아 어머니의 태 안에서 어느 날 태어났던 그런 김승희가 아니고 나만의 자의식의 태속에서 다시 잉태되어 내가 바라는 어떤 새로운 김승희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 비극적인 이글거림 같은 것을 나는 느꼈다.

  나에겐 하나의 태초가, 하나의 원초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동굴 속에서 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은 당분간 거의 아무 것도 존재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말이 하기 싫어졌다. 도대체가 그저 무의미했다. 집에 들어가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식구들과도 낯을 피했다. 서먹서먹한 거리가 마치 식구들을 낯선 사람인 것처럼 대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에 일 년 남짓 세를 살았던 젊은 새댁은 한참 동안이나 나를 벙어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어느 날 내가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그 새댁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때 내가 당황한 나머지 왜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요?‘ 따졌다. 그때 새댁은 그 사실에 대한 변명도 없이 벙어리인 줄 알았더니 말을 다 하네요.“ 하며 웃기만 했다.

  일 년 남짓 같이 살았던 사람이 벙어리인 줄 알 정도로 말을 안 했던 것은 내가 침묵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은 질병처럼 나를 사로잡아 내부에서 백열하는 것처럼 끓고 있었다. 백열의 도가니- 그런 것이 내 육체 속에 끓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언어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침묵이란 말이 없음이 아니었고 어쩌면 울부짖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때 나의 내부는 무성영화의 어떤 클라이맥스처럼 그렇게 침묵으로 울부짖어야 할 무엇이 잠복해 있었다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때때로 홀로 물어본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누구였을까.

  내 육체 속에서 울부짖지 않고서는 배겨날 수 없었던 한 마리의 짐승을 나는 언제나 느껴왔다. 짖어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황폐한 야수, 일종의 미치광이 짐승, 굶주린 늑대 같은 것, 그것이 그때는 침묵으로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것은 나와 더불어 살고 있지만 이제 그것은 자기 나름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와 더불어 오랜 운명을 같이 해오면서 이제 시인이라는 말의 성직에 봉사하고 있다. 누군가는 나를 가리켜 언어의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내 육체 속에 깃들어 나와 희로애락을 같이 해오고 있는 그 기갈에 날뛰는 짐승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때때로 그 괴물이 지겹다. 미쳐 날뛰는 기갈, 골수에 파고드는 환멸과 우울 미치광이, 환상성이 강한 공포- 그런 때는 오장육부를 향해 이빨을 갈 듯이 저주한다.

  너는 그 속에 처박혀서 홀로 미치고 날뛰고 발광하여라. 나는 이제 너와 헤어져 맛있는 것을 탐하고 좋은 옷을 입고 즐겁게 살 테야. 내 너를 유형에 처하니 그 속에서 나오지 마라. 제발 그 속에서 네가 시를 쓰든 말든 나를 편하게 살게 해다오. 이 괴물아.”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괴물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인간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겪는 고통이란 신이 천지창조를 하실 때 겪은 고뇌보다 결코 작지 않으리라. 나는 그렇게 나의 동굴 속에서 정체 모를 욕망에 시달리며 아편과 같은 고통 속으로 탐닉해 들어갔다. 그것이 또 하나의 세계였고 타인들의 천하를 다 합친다 해도 바꾸지 못할 자신만의 지구였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아직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단지 침묵으로 울부짖는 한 마리의 날뛰는 기갈이었다. 그 방은 내 자의식의 인큐베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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