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갇히다/장미숙
어금니를 뽑았다. 중심이 무너졌다. 걷는데 자꾸 몸이 왼쪽으로 기운다. 얼굴 한쪽이 텅 비어버린 듯 허전하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바람이 들락거린다. 혀가 긴장한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빈 곳이 커다란 동굴처럼 느껴진다. 감각에 예민한 혀가 방황하듯 주위를 맴돈다. 이를 닦다가도 흠칫 놀란다. 겉으론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자꾸 얼굴 한쪽을 유심히 보게 된다.
보름 정도가 지났다. 현상은 그대로고 단지 시간이 흘렀다. 계절은 시나브로 변하고 있으며 바람의 세기와 강도도 바뀌었다. 일상은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단지 상처가 아물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인식이 달라졌다.
말할 때 신경이 쓰일 뿐 입속 빈 곳이 삶을 흔들지는 않는다. 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그곳이 원래 채워져 있었다는 걸 잊어버린다. 시간은 많은 걸 평정하고 균형을 잡게 한다. 그저 여러 번 밤낮이 바뀌었을 뿐인데 기우뚱했던 몸이 제자리를 찾았다. 임플란트를 통해 다시 빈 곳이 채워지겠지만 그때는 또 다른 낯섦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진다는 건 채워지는 게 아니라 망각을 습득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생활한 지 오 년이 넘었다. 조용하고 정적인 것에 길들었다. 현재는 고요가 나를 감싸고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주위는 늘 평온을 유지한다. 사물은 사람의 손길에 따라 가치가 부여되고 생명을 얻는다. 시선을 두거나 건드리지 않으면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사물이 신경선 안으로 들어올 때는 힘이 작용하는 순간이다. 작은 힘이든 큰 힘이든 물리적인 개입이 그들을 깨운다.
집안 사물과의 일치는 평정을 유지하게 한다. 익숙한 것들은 산만함 속에서도 질서정연하다. 그건 머릿속에 새겨진 집안의 지도 덕분이다. 하지만 질서는 깨어지기 위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들이 휴가는 나오는 날부터 집안은 낯섦의 절정을 이룬다. 익숙했던 것들이 매일 낯섦으로 거듭난다.
머릿속에 각인된 물건들은 제자리를 잃은 채 방황하고 생각도 혼돈의 상태에 빠진다. 공기마저 흔들린다. 불편함과 소란함의 경계를 넘어 결국은 포기에 이를 때까지 정신은 불안정해지고 공중에 뜬 듯 부유한다. 사물도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제자리에서 이탈된 물건들은 낯선 장소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물건을 찾고 정리하고 또다시 찾아 헤매는 시간의 연속이 새로운 질서로 이어진다.
몇 번의 불꽃이 팡팡 터진다. 서로 강력하게 자리 잡은 습관의 결전이다. 상대의 습관에 스며들기는 쉽지 않다. 부대낌의 부질없음을 겪고 나서야 포기하고 인정한다. 걷어차인 물건이 뒹굴어 다닐 때쯤 낯섦을 수용한다. 아들의 휴가가 끝나갈 즈음, 정적인 것들은 모두 한 번씩 뒤집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비로소 약간의 편안함이 깃든다. 더불어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건 이해도 배려도 아니다. 그냥 편안해지고자 하는 감정의 타협이다.
때로 익숙함은 관성으로 이어진다. 익숙함에 젖어 옴짝달싹 못 하게 되어버리는 경우, 현실감각조차 무뎌진다. 평형이 깨지는 걸 몹시 두려워하는 성격이다.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있을지언정 선뜻 그 세계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주위를 뱅뱅 돌다 포기하기에 십상이다. 막상 들어가 보면 별것 아닌데도 낯섦을 맞이하는 순간이 두렵다. 오랫동안 안정을 갈구하고 평안을 추구한 탓이다.
뭔가에 익숙해지면 그게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틀을 깨뜨리는 행동을 자제한다. 틀이 온전히 보전되기를 바란다. 마치 누에고치가 고치 속에 안주한 채 웅크려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익숙함만으로 채울 수 없다. 새로운 세계가 항상 존재한다.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단단한 벽을 깨부숴야 진입할 수 있다.
십여 년 전, 집안일만 하다 직장을 찾았을 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있었지만 낯섦이 걸렸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 상상하고 걱정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섰다. 하지만 새로운 일도 익숙해지고 환경에 스며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익숙함이 가끔은 지리멸렬함을 불러올 때 행동은 느슨해진다. 꽉 조여두고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려버리고 다시는 조이고 싶지 않을 때 매너리즘에 빠진다. 일에 대한 질과 양을 저울질하며 삶의 가치를 논하는 일이 잦아진다. 단순하고 반복된 노동은 새로움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더는 확장할 수 없는 상상력의 부재, 그 안에 갇혀버리면 익숙함을 지나 의미 없는 몸짓으로 이어진다.
익숙함에 갇혀버린 지 여러 해가 지났다. 두려움은 나이와 비례한다는 것도 요즘 들어 절실하게 깨닫는다.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애써 변명해보지만 그게 본질이 아님을 안다. 낯섦 속으로 뛰어들어 삶을 흔들어야 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흔들리면서 새로움으로 거듭난다. 고인 채 흔들리지 않으면 새로운 바람을 만날 수도, 각도가 다른 햇빛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움츠러든다. 달리기도 전에 미리 넘어질 걸 걱정하는 사람처럼 열없다. 익숙함에 길들어버린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다가는 완전히 주저앉아 바닥에 붙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길함을 인지하면서도 주춤하는 자신과 싸운다. 익숙한 것들의 함정에서 팔다리가 묶인 지금, 나는 동굴 속에 갇혀 그림자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에세이포레 202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