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세상 / 정성화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20년 이상 맥줏집을 운영하던 50대 자영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더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이 살던 원룸을 정리해서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주었다. 그것이 사장으로서의 도리라 생각했다. 가게 유리창에는 도시가스 공급을 중단한다는 통지문이 붙어 있었다.

이 뉴스를 보며 나는 ‘염치’를 떠올렸다. 염치란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쳤을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자신과 함께 일했던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과 고마움 때문에 그냥 떠날 수가 없었을 게다. 가게 문 아래에는 누군가 갖다 놓은 하얀 국화 다발이 그의 넋을 달래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내가 먼저 아는 게 염치다. 염치의 치(恥)는 귀 이(耳)와 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다. 자신의 마음 소리를 자신의 귀가 먼저 듣고 부끄러워한다는 의미로 짐작된다.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저 ‘패널’에게 과연 염치라는 게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특수 임무를 띠고 투입된 용병처럼 현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기 위해 온갖 궤변을 늘어놓는다. 심지어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문제를 두고도 정치적 보복이라 우긴다. 저절로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다.

여권의 분위기는 또 어떠한가. 당권 경쟁에 눈먼 자들이 수시로 불협화음을 내는가 하면, 범퍼카를 탄 아이들처럼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국민들로 하여금 누구의 범퍼카가 뒤집혔는지 구경이나 하라는 건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주무 장관이란 자가 했던 말도 잊을 수 없다. “소방, 경찰 인력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어야 옳지 않나. 이들의 ‘염치 소재지’도 궁금하다.

상당히 많은 20대가 ‘10억이 생긴다면 잘못을 저지르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고 응답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취업이 안 되고 앞날이 불투명하다 보니 한탕주의에 빠져든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도덕과 윤리의식마저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닌지. 젊은이들이 돈 10억에 무너져 내린다면, 그동안 기르고 가르치고 밥상머리 교육을 시켜 온 부모의 공은 어디에서 찾나. 아무리 현실이 막막하다 하더라도 ‘염치불고(廉恥不顧)형’ 인간이 되어선 안 된다. 염치가 없으면 이내 상스러워진다. 그런 사람은 처신에 있어 못 하는 게 없고 안 하는 게 없다. 염치는 인간의 근본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염치가 있어야 잘못을 하더라도 회생의 기회, 변화의 기회, 거듭남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요즘 매스컴에서 들려오는 낱말들은 거의 어둡다. 파행, 결렬, 파업, 탄핵, 참사, 깡통전세, 탄도미사일, 대선자금 저수지 등. 우리가 서로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하지만, 실은 그 누구도 안녕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사회, 경제, 정치, 외교, 민생, 어느 분야든 다 어렵다. 어쩌면 이 나라가 ‘다발성 장기 손상 환자’가 된 게 아닐까 싶다. 대다수의 국민이 현 정부에 바라는 것은 ‘많이 아픈 대한민국’을 어떻게든 치료하라는 게 아닐까.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우선 노동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에 집중하겠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줄탁동기’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가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야 한다는 의미다. 나라의 앞날을 정부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우리 국민도 힘을 보태야 한다. 무엇보다 염치를 되찾았으면 한다. 체면을 생각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리 사회를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리라 믿는다.

유난히 길게 느껴진 한 해였다. 그만큼 힘들었고, 애태웠고, 종종걸음을 했다는 얘기다. 서로의 부은 발등을 어루만져 주며 올 한 해 잘 버텼다고 위로할 때다.

지금 겨울 한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갯버들은 이미 움 틔울 준비를 하고 있을 게다. 우리의 봄도 그렇게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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