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 김도우
사각지대 / 김도우
『스틸 라이프』는 고독사를 다루는 영국 영화다. 고독사한 이들의 장례를 도와주는 구청 공무원의 일상을 통해 이기적인 사회현상을 보여준다. 직업적으로 망자의 가족 대신에 유품을 정리하고 추도문을 쓰며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봐 주는 역할을 한다. 가족에게 죽음을 알려도 보통 거부하고 참석을 꺼려한다. 홀로 죽어간 사람의 유일한 조문객이 되어 그들을 배웅한다. 영화는 내내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뒤덮인 무채색 배경이다. 대부분 가족과 인연이 끊어진 상황에서 죽음의 내용 또한 무참하다. 세상에 왔다가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죽음에 이르는 것을 목도한다.
주인공인 존 메이는 홀로 떠나는 이들의 외로움과 고독에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은 타자와의 소통 부재로 정지된 삶을 살았다. 타자가 망자의 저세상 가는 길을 지켜보면서 남의 죽음을 도와주던 자신도 아무도 지켜봐 주는 이 없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혼자 살던 노숙인이 죽음을 맞이하여 연고자를 찾았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족이 되지 못하였다. 홀로 죽는 것도 비참한데 죽어서까지 가족이 외면한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그들이 먼저 가족을 외면했을 수도 있겠지만 신이 끝까지 그들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오래 묵혀 둔 듯한 집 정리와 냉장고 정리를 하였다. 가재도구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과 먹거리들이 썩고 있었다. 언제 밥을 지었는지 밥솥에 남은 밥에 곰팡이가 말라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냉장고를 소독하고 새 먹거리들을 챙겨 넣었다. 마구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을 세탁하여 개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과는 왕래가 끊어졌다고 한다.
할머니는 해준 것이 없는 자식에게 볼 낯이 없다고 되레 미안해했다. 부모가 그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만으로도 다 해준 것 아닌가. 거기다 키워주었으면 부모 노릇한 것이지 싶다. 그런데 왜 자식한테 미안해야 하는지. 왜 자식은 어머니를 찾지 않는지. 차마 물을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죽는 것까지 남에게 피해를 끼치게 될까 봐 걱정하셨다. 손을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또 하셨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는 것, 손을 잡아주는 것은 단순한 일이지만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이 없는 듯하다. 하루 종일 입 한 번 떼지 않고 지낸다면 무슨 감정이 생기겠는가. 도시락 한 끼, 빵 한 봉지에 삶의 희망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사람의 온기가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게 마련이다.
얼마 전,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세 모녀에게 생활고는 어쩌면 당연히 따르는 일이다. 유족들이 시신을 거부하여 정부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요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 복지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움직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고통에 비하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는 해결되었으면 한다.
홀로 산다는 건 결국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노년에 홀로 산다는 것은 홀로 남게 된 것이리라. 죽음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면 삶이 너무 쓸쓸하다. ‘고독한 삶’의 마감에 애도를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외로운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존중과 가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실제 주변에 많이 있다.
죽음 앞에 당당한 사람이 있을까. 공평한 것이 있다면 누구나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리 죽음을 의식하여 힘들지 말았으면 한다. 삶은 죽음을 향하여 꿋꿋이 가는 길이다. 어떤 이야기도 어떤 회유도 듣지 않고 마지막 그날에 도달한다. 할머니의 삶이, 노숙인의 삶이 나와는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만 잘 살면 뭐하나, 다 같이 잘 살아야 진정으로 사는 것이리라. 사각지대는 그것이 끝인지 시작인지 알 수 없는 영역을 향해 가는 길이다.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밝은 곳으로 안내해야만 한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진다. 진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