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 윤모촌

 

 

2차대전 후 강대국의 예속에서 독립한 나라들은, 후진국이란 꼬리표에다 으레 연상케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걸핏하면 벌이는 쿠데타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정변에서 쫓겨나고 쫓아내고 하는 것을 보면, 마치 치기 어린 아이들이 벌이는 놀음판이다. 권좌에 앉는 구실이 민생(民生)을 위한다는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잿밥에 눈독을 들인 격이어서 그 나라 백성들이 측은할 뿐이다.

권좌와 부귀영화는 같은 뜻으로 이어지는 말이고, 돈에 얽힌 부정적인 면은 어느 때고 있던 얘기다. 한 나라의 정권이 무너지는 이면에는, 그래서 동서(東西)가 한가지로 돈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인다. 재물에 따르는 영욕의 그 얼룩들을 바라보면서, 돈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돈은 벌 때보다는 쓸 때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제 돈을 쓰면서도 지탄을 받는데, 이것은 옳게 쓰는 사람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깨끗이 벌어서 빛나게 쓰는 사람이 흔하지 않은 까닭에, 재떨이와 부자는 쌓일수록 더럽다는 속담도 있다. 그러나 욕을 먹는 한이 있어도 부자가 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부자가 되는 비결을 학자에게 물었다.

"큰 부자가 돼 보고 싶은데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학자는 쉬운 일이라고 대답했다.

"한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시오."

사람이 그런 자세로 오줌을 눌 수는 없다.

"한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라니요. 그건 개가 아닙니까?"

"그렇소. 개가 되는 거요. 사람다우면 큰 부자는 될 수 없소."

학자의 대답이 옳은가의 여부는 고사하고, 돈을 벌자면 남다른 데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고종 때 박(朴) 떠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식했으나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다. 박모 대신(大臣)의 눈에 들어 궁내부(宮內府)주사가 된 그는 돈 벌 연구를 했다. 낚시 거루만 한 헌 짚신 한 켤레를 유리병 알코올에 넣어, 사무실 구석에 모셔놓고 날마다 그것에 절을 했다. 모리스라는 영국인이 그것을 보고, 그토록 위해 바치는 까닭이 무엇이냐 물었다.

박 떠돌이는 아무 소리 말라며,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가보(家寶),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신던 짚신이라 했다. 모리스는 귀가 번쩍 띄었다. 옳지!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의 소장(所藏)감이다. 본국으로 가져가면 한몫 볼 것이 틀림없다 몸이 단 모리스가 1만 달러까지 주마고 했다. 박은 못이기는 체하면서 내주고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즈막에 재벌이란 말의 사용 빈도가 잦아졌다. 81년도(작년) 수치(數値)로 GNP가 1인당 1천6백 달러를 넘어서 살기가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돈과 인연이 먼 사람에겐 여전히 인연이 먼 얘기이다. 아직도 한자리 술값에도 못 미치는 액수의 절대 생계비가 모자란다는 도시 근로자의 임금에 대한 시비가 인다. 편재하는 부(富)를 사회에 되돌려야 한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 속에서 '한탕주의' 의식은 대낮에도 흉기를 들고 고개를 든다.

돈이란 대체 무엇인가. 최선의 주인이며 최악의 주인이라고 한 말이 있다. 돈은 쓸 때가 더 어렵다는 것을 일깨운 말이다. 속 빈자의 주머니에 들어가면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는다. 실업가도 아니고 상인도 아닌 사람이, 권력형으로 수십억, 수백억을 쌓아 놓았다는 얘기는, 돈에 대한 사람의 속성을 말해 준다.

중국 대륙을 통치하던 장개석(蔣介石)이 본토에서 밀려난 것은 바로 돈에 얽힌 부덕(不德) 때문이었다. 2차 대전 때 원조국의 무기가 암시장으로 먼저 나돌고, 상해(上海)에는 외국어를 상용하는 특수 부유층 대문 앞에, 자고 일어나면 굶어 죽는 자가 생겼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이런 외신 보도를 읽은 적이 있지만, 돈이 최악의 주인이었음을 보여 준 예다.

'돈은 오물과 흙 같다.-전본분토(錢本糞土)'고 한 선인들의 말을 보아도, 돈의 악덕(惡德)은 옛부터 있어 온다. 아첨하는 자는 돈이 모이지 않는 것을 근심한다고 한 장자(莊子)의 경구(警句)라든가, 문신(文臣)은 돈을 사랑하지 않고, 무신(武臣)은 죽음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 것은, 돈의 무용론(無用論)을 말한 것은 아니다. 부덕(不德)을 경계한 것뿐이다.

나는 반생을 가난뱅이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부자가 돼 보려는 생각은 해본 일이 없다. 가난을 핑계 삼는 말이 되지만, 내게 당해선 허황하고 부질없는 생각일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얘기대로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한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면서 돈을 벌 자는 생각은 할 수도 없는 위인(爲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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