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댓글 2026-02-16 (월) 12:00:00 조옥규 수필가
 
인간의 마음 밭이 황폐해서일까. 아니면 운 없는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인가. 혹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동질감에서일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등,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경우를 대입해 봐도, 머피의 법칙은 내 뜻대로만 세상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것 같다. 말없이 반복되는 일상사를 통해, 스스로 느끼고 돌아보며 인격의 꽃을 피우라는 우주의 섭리가 아닐까 싶다. 드디어 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14피트 트럭이 옆으로 길게 누워 있다. 심각한 부상자가 생겼을 듯하다. 순간, 내가 지체한 삼십여 분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정신이 올바른 사람은 남의 치명적인 불운을 보며 웃지 못한다. 해프닝 같은 가벼운 엇갈림은 대부분 유머로 넘길 수 있지만, 지독한 머피의 법칙도 있어서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본 친구가 있다. 치킨집을 개업하면 곧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돼지고기 삼겹살집을 개업하면 돼지열병이 퍼지고, 정말로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친구 부부는 항상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자연은 우리에게 늘 신호를 보낸다. 비가 오려면 바람은 스산해지고, 까마귀 울음은 거칠어지며 곤충들도 부산하게 움직인다. 내 어린시절의 어른들은 기상대의 예보가 없어도 공기의 흐름과 냄새에 따라 비 올 것을 대비하고 단속했다. 현명한 사람은 넘어졌다 일어설 때 돌멩이 하나라도 주워 들고 일어난다고 한다. 내 친구도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빈손으로 일어서지 않았기에 머피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리라. 나도 오늘, 정체된 길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든다. 운수 좋은 날이다.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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