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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리, 이 시간

 

                              이현숙

단풍이 든다.

낙엽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기도 하고

그 위를 걸으며 신발 밑에서 전해지는바스라지는 소리를 즐기기도 한다.

가을을 다채롭게 만들어 우리의 눈은 즐겁지만,

생명을 다해 가는 이파리와 떠나 보내야 하는 나무는 추운 계절을 나기 위한 고군분투다.

한 가운데에 단풍잎보다 더 빨간 의자가 놓여 있다.

왜 여기에, 더구나 저 색일까? 수많은 색 중에 하필.

너무 강해서 제대로 물들지 못한 채 뒹구는 낙엽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을까.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동정을 가장한 은근한 쾌감이라지 않던가.

 

의자에 앉을까 하다가 그만둔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양면성이 있다지만,

나의 맨얼굴은 그냥 서 있는 자리와 상황을 즐기라고 말한다.

따지고 계산하거나 너무 깊게 파지 말라며.

자연은 비교 당할 수 없다. 

떨겨를 남기고 사라지는 

생명을 위한 희생의 흔적들이니

그 자체로 귀하다.

색이 곱거나 볼품없이 시들었거나.

 

그냥,

주어진 이 자리와 이 시간에 물들자.

 

단풍이 든 숲속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