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다. 며칠 전 꽃구경 가자는 지인의 말에 오랜만에 장거리로 나간다는 생각에 설렜는데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마당의 팜튜리는 길쭉한 이파리로 자신의 허리께를 스치며  부러질 듯 무섭게 흔들렸다. 엘에이에서 넘치도록 따스한 햇살을 당연하게 즐겼던 야자수가 칼바람에 부르르 떨며 눈 덮인 산을 두렵게 바라본다.

집 밖은 여러 형태로 '기록'이라는 단어를 앞세운다 . 빗물에 내밀려 산사태가 나고 눈에 파묻혀 고립된 주민의 구호 요청이 뉴스를 가득 채운다. 엘에이 우리 집에서  40분 거리에 사는 친구는 그 집에서 30년 살았는데  마당에 눈이 내려 쌓이기는 처음이라며  아이처럼 흥분해서 영상을 찍어 보냈다. 이런 상황이니 활짝 피기도 전에 꽃은 비에 젖어 무거운 몸으로 땅에 떨어졌거나 바람에 등 떠밀려 낯선 곳에 내려앉았으리라

전지전능에 도전하는 인간들에게 대자연은  까불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건 아닐까.  건너편의 산은 눈으로된 갑옷을 차려입어  자신의 위엄을 보인다.  

이제 잦아든 바람과 비. 회초리 든 겨울의 끝자락에 봄을 기다린다. 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봄은 반드시 온다는 자연의 순리를 알기에.  눈도 곧 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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