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리운 사람

 

 

 

 

 나는 그녀를 보영 언니라고 불렀다나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영어 학교에서였다그때 나는 미국에  이민 왔을 때라 우선 영어를 배워야 했기 때문에 작은오빠가 자신이 미국에 먼저 와서 다니던 학교에 나를 등록해 주었다나는  학교에서 아침부터 하루 종일 영어 공부를 했는데점심 때쯤이면 그녀가 홀연히 나타나서 거기 있던 한국 학생들과 같이 점심을 먹곤 했다그녀는 오전에 초등학교 보조교사로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상냥하고 명랑하며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웨이브가   머리에 햇빛에 약간 그을린 듯한 얼굴쌍꺼풀진  눈에 가는  안경을 걸치고 항상 웃음을 머금은 입모습은 누구에게나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그녀는  나와 친숙해졌고 언니처럼 나를 다정하게 돌봐주었다친구가 없는 내게 그녀는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우리는 주말이면 데니스 커피숍에서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함께 쇼핑몰도 가고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  보기도 하였다.그녀는 내가 살던 아파트에 가끔 놀러 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예술과 문학인생관 그리고 신앙에 대해 자유롭고 열띤 토론을 하였다그즈음 나는 신앙심에 불타올라 매일 저녁 신구약 성서를 읽었고   연거푸 완독한 무렵이었다한국에서라면 대학에서 한창 재미있을 나이에 문화와 생활이 다른, 황무지 같은 타국에서의 삶은 나에게 신앙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영언니를 만나게  것도 다행한 일이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그녀는 24 정도였던  같다그녀는 한국에서 미술 대학  제일로 꼽히는  조각과 출신이라 미술에 조예가 있었다그래서 차츰 미술 계통의 일자리로 옮겨 월트 디즈니와 워너 브라더스 등의 유명한 회사에서 애니메이터로서의 입지를 굳혀 갔다.

 나는  시립 도서관에 취직이 되어 낮에는 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에 다니며 학점을 쌓아가기 시작했다우리는 나름의 인생을 열어 가며 우정을 지속하였다.

 

  5년이  흘러 내가  오빠네를 따라 L.A 근교 밸리 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결혼하고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여념이 없는 생활을 하기에 이르는 동안,  그녀와의 만남도 소원해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아이의  때나 처음   장만을 하였을  그녀는 정성 어린 선물을  들고 우리를 방문하여 축하해 주었다그리고 보니그녀는 내게 선물을  주길 좋아 했다그녀가 내게   가지 멋진 장신구를 아직도 지니고 있다.

 

 아무튼 내가 결혼 생활에 열중해 있는 동안 그녀는 나름대로 당당한 커리어 우먼으로 거듭나 있었고멋진 집에 살며 매력적인 남자 친구도 있는 듯했다그러나 그녀의 결혼 소식은 도통 들려오지 않았다내가 가끔 물어보면 왠지 확신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했다그녀의 노부모님과 친언니는 그런 그녀를 걱정하며 못마땅해한다고 했다.

 

 세월은 계속 흘러 갔다강산이   변하는 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늦깍이로 대학도 졸업하고 승진도 하고 아이들도  자라서 독립하여 각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동안도 그녀와 가끔 통화는 했지만,  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

 어느 전화를 해보았더니 그녀의 사정이 그동안  힘들어진  같았다애니메이션 회사에서는 이제 프러덕션을 해외로 아웃소싱(Outsourcing) 해서 그녀가 일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다른 일을 찾고 있지만 그리 쉽지  않다고 했다나는 내가 알고 있는  가지 정보를 알려 주고 모든   되길 빌었다.

 

 그리고  년이  흐르고 내가 다시 그녀 소식을 궁금해하고 있을 무렵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그녀가 나를 부른 곳은 어느 선교 단체의 건물이었다그녀는 이제껏 외국에 나가 있다 잠시 세미나에 참석하러  것이라고 했다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평소 멋진 명품만 입던 스타일과는 달리 낡아 보이는 스웨터에 청바지 차림의 그녀가  생소했다.

 우리는 한국식당에서 식사하고 야외로 나가 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그동안 선교사가 되어 남미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그곳 아이들의 사진과 그들이 그녀 생일에 그려  그림도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녀는 나더러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답답해하며 한참 일방적인 훈계를 하였다나는 그동안 나름대로 얼마나 많은 공부와 사색그리고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진리를 탐구해 왔는지  그녀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고 반박이나 변명을 하지 않았다그렇게 온몸으로 선행을 실행해  그녀 앞에서 나의 항변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무력했다.

 

 그곳 아이들에게 전해주라고  가지 선물을 사준  며칠  다시 보자며 헤어졌다.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만나면 선교에 보태라고 후원금을 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다시 만나기로  그녀의 일정이 다른 중요한 일과 겹쳐 도저히 나를 만날 시간이 되지 않아 바로 떠나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녀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후로 그녀 소식이 궁금하여 연락을 해보았지만 잘되지 않았다문자를 남겨도 답이 없었다이제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수가 없다예쁘고 재주 많고 착하던 보영 언니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계신지아직 외국에 살고 있는지결혼은 했는지혹시 한국으로 돌아간  아닌지?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답은 있고 정답은 없다는데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최소한의 연락은 주고받을 수 있는 여유가 대단한 사치라면 나도 이쯤에서 인정해야겠다. 아니 겸허하게 감사해야겠다. 내 삶이 지극히 여유로왔다고...

예전엔 전쟁이나 재난 등 물리적 영향으로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발달로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수소문해서 연락할 수 있을 정도다, 다만 각자의 삶이 연락할 만큼의 여유가 안 되기 때문에 연락을 유보하는 것이리라. 연락하지 않는다고 그 삶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니까. 

 

 보영 언니, 세월이 갈수록 잊히기는 커녕 아쉽고 그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