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막내삼촌

 

                                                                                                                                       헬레나 배

 

  조부모님에게는 아들만 셋이 있었다. 첫째가 나의 아버지, 그는 할아버지의 원을 따라 의대 졸업 후, 의사가 되셨고, 둘째 삼촌은 독일 유학을 거쳐 안과 의사로 평생을 사셨다.  막내인 셋째삼촌, 그는 애초에 신부가 될 사람이었다. 가톨릭 신학 대학교에서도 아주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제 서품을 받기 하루 전날 그가  쫑파티 겸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마지막 치기를 부리던 모습을, 다음 날 서품식을 거행하기 위해 신학교에 미리 와 머무르고 계시던 주교님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7년간의 공든 탑이 하룻저녁에 무너져 버린 순간이다. 그는 애석하고 억울하게 실격이 되어,  신부가 되지 못한 채 신학교를 나와야 했다.

 

  막내 삼촌은 그 후 그의 큰 형이 되는 우리 아버지 집에서 함께 기거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할머니가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계셨다.

삼촌 덕에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어린이를 위한' 가톨릭 서적들과 라틴어 성가 등을 접할 수 있었다. 그때 읽은 <마리쎌리노의 기적>의 감흥은 아직도 내 뇌리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 당시 한창 사춘기였던 나의 큰 오빠는 우리를 향한 작은삼촌의 열성적인 종교 교육에 반감을 보이기도 하여서,  그럴 때면 아버지께서 “아버지가 없을 때는 삼촌이 아버지나 마찬가지니까 삼촌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 라고,  종종 훈계하시곤 하셨다.

 

  두 형들과는 달리 할머니를 닮아, 키가 좀 작은 편인 그는 깨끗한 용모의 품위 있는 노총각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삼촌의 윤기 있는 검은 머리와 그의 특이한 얼굴 생김 - 맑은 빛이 감돌던 검고 아름다운 눈동자, 날렵하고 높은 코, 조금 도톰해 보이던 입술 등, 절대 흔치 않은, 개성 있는 얼굴의 소유자였다.

마침내, 그가 다니던 성당에서 어느 얌전한 규수 감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그녀도 키가 좀 작고 단아하며 다부진 성품에 항상 웃음이 가득한 큰 입을 가진 여성이었다음식솜씨가 좋은 그녀는 작은삼촌의 자랑거리였다. 그들에게 첫딸이 태어났다. 둘째 삼촌의 결혼이 늦었던 관계로, 그 애가 나의 첫 사촌 동생이다. 곧이어 딸 둘이 더 태어나 모두 딸만 셋이 되었다. 부자는 아니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나중에 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가 가톨릭 제단인 어느 병원에 근무할 때,  그를 짝사랑하던 수녀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의 직속상관이기도 하였는데 가끔  삼촌을 찾아와 그의 등 뒤에서 기대 울며 자기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 살자는 애원을 하였다고 한다. 작은삼촌은  집에서 약주를 드시며 자기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실토하며 자기가 본의 아니게 혹, 어떠한 실수가 있을까 봐 미리 고백한다고 하셨단다.

그는 또 자기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면 꼭 신부가 되고 싶다는 말씀을 평소 하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근무 중 피곤해서 잠시 쉬겠다며 양호실에 간 그가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궁금해진 직장 동료가 마침내 찾아가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숨져있었다. 심장마비였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 같았다.

나는 그때 미국에서 작은삼촌의 부음을 전해 듣고 며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직장도 가지 않고 울며불며 하느님을 원망하였다. 나의 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만 이제 고작 사십 대이신 막내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여중 시절에, 나의 엄마가 가족보다 먼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후, 지방에 있던 작은집에서 거치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예전에 나의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아버지 대신’ 노릇을 톡톡히 해주신 것이다.

생시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오던 그의 후덕한 성품으로, 그의 장례미사는 아주 성대했다. 그가 살던 지방의 많은 사제와 수녀들, 병원 직원들, 환자들이 함께 모인 그 자리는, 마치 어느 성직자의 그것처럼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러졌다.

 

  세월이 약이라고 한다. 어언간,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얼마전,  그의 남은 가족이 L.A.를 방문했다. 막내삼촌이 생시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워하던 딸들과 그들의 남편, 아이들까지 동반하여 엘에이에 찾아왔다사촌 언니들과 오빠들을 보러 온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우리는 반갑게 만나 서로를 기특해하며 눈물 어린 웃음으로 포옹하였다. 아빠 없는 세월,  말 못다 할 서러움도 많았으련만 맑고 밝기만 한 얼굴을 마주 하니,  그동안 멀리 있다는 핑계로 언니 노릇을 제대로 못 한 나 자신이 무척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항상 앳된 모습이던 작은 숙모님은 삼십 년의 세월도 전혀 관계없다는 듯 여전히 곱고 우아하시다. "하느님이 그분을 너무 사랑하셔서 일찍 데려가신 것 같다"라는 숙모님의 말씀에서 평소 남편을 신뢰하고 사랑하던 그녀의 마음이 전해왔다. 그 숙모님의 모습을 뵈니 미국에서 사는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우리 집안 고유의 가풍과 예절들 기억이 갑자기 부스스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세 딸이 이제 모두 결혼하여 예쁜 아기들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나의 노모가 그들을 위해 점심을 ‘쏜’ 멋진 뷔페식당에서 조카아이들 이름과 나이를 일일이 수첩에 적었다. 이 건망증 많은 이모가 혹시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들 모습에서 얼핏얼핏 스치는 막내 삼촌의 모습, 곧고 바르던 행동, 푸르도록 맑던 눈 모습이 경이롭고 반갑기만 하다. , 이 자리에 작은삼촌이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인생은 때로 이렇게 불공평하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건지?

 

  빨려 들 것 같이 물음표가 가득한 조카아이들의 맑은 눈동자가 앞으로 한참 동안 내 눈앞에서 아른거릴 것이다. 그들은 자기 외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그들 엄마가 지금 자신들 나이 무렵 가신 분을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다만 그들 자신과 또 우리 서로의 모습에서 조금은 상상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과 함께 디즈니랜드와 게티 뮤지움에도 다녀오고, 우리 네 남매 모두 각자의 집으로 초대해 화기애애 못다 한 온정을 나누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다. 우리는 어쩌다 또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건지

나의 귀한 사촌 동생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모쪼록 훌륭하게 성장해 외할아버지가 못다 한 인생을 원 없이 잘 살아주길 간절히 비는 마음이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