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에피소드 

 

 

 호박을 좋아한다. 그리고 호박꽃도  좋아한다.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시골집 뒷담으로 피어오르던 주황빛의 활짝 핀 호박꽃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호박 넝쿨에 작은 호박들이 달려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신통했었던지. 어쩌다 사람들이 “호박꽃도 꽃”이라는 표현을 쓸 때마다, 나는 도저히 그들이 왜 저렇게 예쁜 꽃을 못생긴 여인에 비유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호박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마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일이다. 그때 우리 가족은   병원을 운영하고 계시던 아버지를 따라 청리라는 아주 작은 면에서  살고 있었다. 비록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아이였지만,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병원 집 막내딸인 데다 항상 곱게 땋은 갈래머리에 예쁜 리본을 달고, 서울의 외가에서 보내준 고급 옷을 입고 다녀서 또래의 다른 촌아이들과는 좀 다른   존재로 취급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동네 친구들과 함께 철둑길 너머 물엿 공장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모두 신발을 벗고 멍석 위에 앉아서 놀고 있을 때였다. 그 무렵  친구들은 검은색 운동화나 고무신을 주로 신고 다녔는데, 그 중 어느 아이 하나가 내가 벗어 놓았던 하얀 구두가 신기했던지 만지며 신어보곤 하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나의 구두를 다투어 신어보다 마침내 어느 발이 큰 친구 때문이었는지 구두의 끈이 떨어지고 찢겨, 내가 다시는 신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날 오후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찢어진 구두를 보이며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할머니께서 무척 노하신 것 같았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병원을 하셨다지만, 워낙 작은 시골이어서 살림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귀여운 막내에게 새로 사준 그 귀한 구두가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망가져 못 신게 되었으니, 할머니 속이 무척 상하신 것 같았다.

 

 다음날 할머니께서는 그 물엿 공장 집으로 찾아가셨다. 우리는 그때도 그 집에서 함께 모여 놀고 있다가,  할머니의 느닷없는 방문에 놀랐다. 할머니께서는 다 헤어져 버린 나의 하얀 구두를 한 손에 드시고 “어느 년이냐, 우리 손주 구두를 이렇게 다 망가뜨려 놓은 것이?” 하시며 추궁하기 시작하셨고, 아이들은 무서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침,  그 집 아이의 엄마가 집에 있다가 할머니께 사과드리며, 미안한 마음에 자기 집 뜰에서 키우고 있던 잘 자란 호박 하나를 따서 할머니에게 드렸다. 할머니는 공손하고 싹싹하던 그 친구 엄마와 잠시 대화를 나누신 후, 그제야 노가 좀 풀리셨던 것 같았고, 우리 가족은 그래서 뜬금없이 그날 저녁 호박 반찬을 먹었다.

 

 사실 나는 그때 할머니께서 그렇게 성을 내시고 남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시는 것을 처음 보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인자하신 성모 마리아처럼 손에 묵주를 드시고 기도만 하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인제와 생각하니 할머니의 그러한 우발적인 행동도 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억센 시골 아이들 틈에서,  여린 손녀딸이 행여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할머니를 그렇게 용감(?)하게 몰았던 것이리라.

 

 할머니는 작으신 키에 얼굴이 훤하며 이목구비가 잘생기신 참 고우신 분이셨다. 본시 서울에서 태어나시어 진명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실 때 일본 천왕으로부터 금메달까지 받으셨던 재원이기도 하셨다. 그 후 대구 근교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그 지방에서 제일 큰 지주의 아들이던 , 지금의 우리 할아버지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까지 하게 되신 것이다.  

 부잣집 마님으로 온갖 호강과 특권을 누리시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우리나라의 시대적 환난과 함께 그녀 자신의 삶 또한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인고의 나날을 굳건히 이겨나가던 할머니셨다. 그런 할머니지만, 또한 인간이셨기에 자기 핏줄을 너무 사랑하고 아끼던 나머지, 아니 그보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잘도 인내하던 그때까지의 자제력이, 사랑하는 손녀의 구두끈처럼 그 한  순간 어처구니없이 터져버린, 서러운 하소연 같은 것이 아니었을지? 

 

 훗날 나는 호박요리를 하거나 식탁에 둘러앉아 나의 가족들과 호박요리를 먹을 때마다 어렸을 때의 '호박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호박은 언제나, 할머니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 하셨는지 상기 시켜준다. 할머니께서 살아 계셔서 다만 한 번이라도 미국 구경을 시켜드리고 증손녀들과 함께 식사도 하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는 생시 텔레비전에 나오는 미국 사람들을 보시며 “저 사람들은 참 축복받은 사람들이야” 하시며 서양 문명과 문물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하셨는데. 할머니는 시대를 잘 못 타고 나신 것이 아닌지?

 나를 그렇게 사랑하셨던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데,  가끔 내가 할머니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곤 한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좋아하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나중에 가서 그 점에 대해 곧잘 혼자서 후회하는 것 등이.

 

 어쨌든 호박을 좋아한다. 새우젓을 곱게 다져 넣고 참기름, 깨소금 조금씩 넣어 자작하게 단시간 끓여낸 호박 찌개는 달고 부드러워 밥에 비벼 먹어도 좋고, 나박나박 썬 호박을 풋고추와 두부를 함께 넣어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도 일품이다. 그리고 고소하고 바삭하게 구워낸 호박전은 입맛 까다로운 우리 아이들도 참 좋아한다. 

 

 나는 오늘도 한국 식품점에 들러 내 어렸을 적 보았던 그 호박처럼 둥그스름하게 잘생긴 호박을 골라 집어 카트에 담는다. 맛 좋고, 영양 많고, 값싼 호박 하나만으로도 나는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