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진화하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기차나 버스 타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나를 어린 철학자가 되게 한 것 같다.
달리는 기차 안의 안락한 초록빛 벨벳 좌석에 앉아,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바라보던 푸른 논밭은 얼마나 풍요로웠던가?
또, 크고 둥근 대야에 장터에서 팔 무언가를 가득 담고, 머리에는 수건을 두르고 몸빼바지를 입은 아줌마들을 태워 나르던 서울 시내버스 안에서, 방과 후의 나른한 햇빛을 받던 어린 소녀는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깨달았을까?
오래전부터 정신적이고 영적인 진화를 소망해 왔다. 인성 안에 신성이 내재한다는 사실, 이것을 어렴풋이 느껴왔기 때문일까?
영혼이 진화되려면 영적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우선 마음을 깨끗이 닦고 ( 정화의 단계), 빛을 받아 (조명의 단계), 마침내 신을 만나게 된다 (일치의 단계)고 한다. 애석하게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 민성기 프란씨스칸 신부님이 생시 L.A. 에서 피정을 열었을 때 들려준 이야기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인 동시에, 한 가닥 희망처럼 내게 와 닿았다.
하지만, 매일의 바쁜 현실을 살아오는 동안, 나의 영혼은 깊은 망각 속에 빠져있었다.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일구어 가는데 나의 젊음이 다 소진되어 버린 느낌이다. 주어진 삶에 충실하도록 애써왔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내 모든 것을 바쳐 가족과 함께 이룩해온 ‘사랑’의 집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나름대로 생을 찾아 떠난 이제, 전보다 자신을 돌아다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좀 생겼다. 사실 요즈음 나는 이러한 작은 자유시간을 즐기고 있다. 오랫동안 읽고 싶었던 책과 보고 싶었던 영화와 듣고 싶었던 음악, 이런 것들을 드디어 다시 접할 수 있게 되어 더없이 만족하다.
거의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동안 내가 놓치고 산 것을 되찾아 본다. 뒤처졌던 문화 생활 진도를 따라 맞추는 재미로 사는 요즘이다. 얼마 전에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처음 듣고, 애절한 독백처럼 맘을 사로잡는 노래가 너무 좋아 듣고 또 들었다.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솔직히 이제껏 나름대로 영적인 성장을 향한 꿈은 끊임없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영적 독서와 영성강의에도 쫓아다니곤 하였다. 항상 목이 말랐고, 그래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간절히 맛보고 싶었다.
수필가로서의 등단을 시도한 것도, 내 안에 있는 인식의 샘을 마르지 않게 하고 싶었던 작은 바램이었다. 내 안에서 나오고 싶어하는 어떤 것이 있음을 느끼곤 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무엇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싶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처럼 수정으로 지어진 영혼의 성에 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순결한 마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리사욕에 눈먼 이기주의자에 불과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절망하곤 했다.
가능하다면 마음에 족쇄를 더 이상 채우지 않고 싶다. 무한한 가능성에 항상 열려 있고 싶다. 가끔은 우주의 넓은 품 안에 편히 안긴 기분이 든다. 주위에 산재한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맛있게 들여 마신다. 팔을 크게 벌려 사방에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느껴본다.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미소 지으며 마주 바라본다.
안심하여라.
이제 방황은 끝났다.
너는 이제 도착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모든 것을 놓아버려라.
비로소 너는 모든 것 되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