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서

 

 빅토리아와 나는 같은 직장에서 일했다. 인연이 있었는지 나는 그녀와 같은 팀에서, 책상을 마주 보며 함께 일했다. 아마 그렇게 한 이삼 년 같은 팀에 있었던 것 같다, 각자 일하는 시간이 달라져 내가 다른 팀으로 옮겨갈 때까지.

 

 그녀는 미국 흑인 아버지와 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다섯 살 때쯤 미국으로 입양된 혼혈아였다. 그녀가 먼저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 전까지, 난 전혀 짐작할 수도 없었지만. 그녀는 피부색이 그다지 검지 않았고, 체격도  보통의 동양 여성 같았으며,  눈이 크고 예뻤다. 그리고 긴 흑발 머리를 항상 보기 좋게 올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새로 입사해 처음 일을 배우느라 힘들어하는 내게, 그녀는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내성적이고 심약한 내가,  까다로운 고객 상담의 여러 가지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되어 어쩔 줄 몰라 할 때마다, 그녀는 특유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마치 친언니처럼, 나를 가르쳐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마도, 그녀는 자기 앞에 갑자기 나타난, 연하의  한인 동포 여성에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자신의 출생에 관한 서류를 보여주었다. 그녀가 19603월에 미국으로  입양되었을 당시 함께 따라온 서류인 것 같았다. 그녀 어머니의 성은 , 그러나, 친 아버지의 이름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다섯 살 때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브라운씨 가정에 입양되어 미국 시민권자가 된 서류( Certificate of Naturalization)에는 머리를 한쪽으로 곱게 땋아 내린 어린 빅토리아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훌륭한  양부모님을 만나  좋은 가정에서 기독교식 교육을 받아 잘 자랐고,  결혼하여 아들 하나 두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다분히 정열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과묵한 편이었지만, 내게는 항상 다정다감해서 자주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녀가 한국의 부모님을 찾고  싶다고 하여, 내가  로스엔젤레스 영사관에 그녀의 서류를 보내어 의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벌써 너무나 오래전 일이고, 확실한 정보가 부족해 찾기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미안한 마음으로 그 사실을 알렸더니, 그녀는 애써 괜찮다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매년 휴가철엔, 외국 여행을 다녀오곤 했는데, 돌아올 때마다 언제나 내게 기념품을 사다 주곤 했다. 빅토리아가 태국 여행길에 내게 사다 준연꽃이 곱게 그려준 실크 스카프와 보라색 비단 지갑을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어느 해는 직장 동료 도로시와 함께 2주 동안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무척 놀랐고, 깨끗한 시내 거리와 진귀한 한국산 상품들이 너무 좋았다며 또 가고 싶다고 했다. 도로시는 빅토리아가 쇼핑을 너무 좋아해서 자기가 곁에서 좀 힘들었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내가 빅토리아와 다른 팀이 된 후, 전처럼 매일 그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끔 쉬는 시간에 건물 밖에서 산책하며 그녀를 마주치기도 했다. 어느 날,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몰라보게 날씬해졌고,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놀라서 영문을 물어보니, 건강에 관해   의사와 상의한 후, 글루텐 프리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언제나처럼, 나와 가족들의 안부를 챙기며, 변함없는 우정을 보여주었다. 한번은 직장에 내 어린 딸을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자기가 이모가 된 것처럼 데리고 함께 잘 놀아주기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져 모든 직원이 3년 동안 직장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빅토리아는 조용히 은퇴했다. 아마 은퇴 적령기가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보통 때 같았으면 성대한 파티가 있었을 텐데, 모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섭섭하게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신화의 사전적 의미다 -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우주의 기원신이나 영웅의 사적(事績),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나 설화 따위가 주된 내용인 신비스러운 이야기.

어떤 집단이든 대개는 자신들의 신화를 갖고 있다. 그 내용이 다소 허무맹랑해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으려 한다. 거기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 문화적 동질성을 찾는다.

 개인들에겐 부모가, 잘 낫건 못 낫건 신화를 대신하는 존재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부모는 현실적 존재이지만 환상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부모는 나의 시원(始原) 이기 때문이다. 신화가 그 집단에 결속력과 자부심을 주듯, 부모란 개인에게 자긍심과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준다.

 신화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황당무계한 옛날이야기 정도로 알았는데, 빅토리아 일로 신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됐다. 인간에게 신화란 꼭 필요한 정신적 유산이다.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란 생물학적 존재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존재로서의 부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빅토리아와 나는 어쩌다고국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완연히 다른 외국에 와 살게 된 걸까? 우리의 출생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 듯이, 미국에 살게 된 계기 또한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입양되었고,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엄마를  따라 가족 이민을 온 경우였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각자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단언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기 전 (하늘나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이런 남다른 인생을,  자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조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더 간절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 후손들이 장차 여기 미국에서 살아갈 앞날을 생각해 본다. 그건 단연 함께 하는 삶이 아닐까? 우리 민족의 지혜로운 전통을 타민족과 나누며, 또 그들의 다양한 값진 문화 또한 배우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우리 사고와 경험은 훨씬 유연해지고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차원의 신화가 창출될 수 있는 건 아닐지?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도록 주어진, 빅토리아와 나의 남다른 운명에 순응하며, 거기 숨겨진 삶의 의미나 의도를 알아낼 수 있도록,  늘 깨어 감동하고 감사하며 살고 싶다.

 

나는 믿는다, 빅토리아는 큰 사랑을 가진 여인이라는 것을. 혈연과 지연을 뛰어넘어 지구와 우주를 포용하는 큰 사랑의 소유자라는 것을. 이젠,  혼자 속으로 삭히던 슬픈 출생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 가슴을 활짝 펴고 자유를 찾아,  역동적인 새 신화를 살아가는, 그녀의 인생에 신의 가호와 축복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