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은 산, 물은 물
배 헬레나
산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아버지처럼, 산은 바라보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한없이 편안한 위안을 주는 존재다. 산에 가면 신선한 초목에서 뿜어 나오는 맑은 공기를 흠뻑 들어 마실 수 있어 좋고, 신성한 정기를 받아 누구나 유유자적한 명상가가 되기도 한다.
깊은 계곡을 따라 콸콸 흘러내리는 신령한 물줄기를 본 적이 있는가? 유유히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물 따라, 넘실거리는 햇빛의 군무는 또 얼마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지? 목마른 사람을 살려내고, 온갖 더러움을 정결하게 씻어주며 만물에 생기를 부여하는, 물은 바로 기적의 손길!
어느 날, 나는 J가 몰아주던 차 안에서 무심히 차창 밖으로 스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어느 초여름, 내 동심의 눈을 통해 비치던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다.
어느 초여름, 나를 태운 버스는 가로수 사이로 난 시골 신작로를, 뽀얀 먼지를 내며 천천히 달려가고 있었다. 파란 하늘엔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연초록빛 미루 나무 이파리들은 따스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즐거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 세상에 걱정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자연의 품 안에서 완전히 한 몸인 어린 나의 모습, 미지의 세계에로의 온전한 의탁,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세상의 무진한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하리라는 완전한 신뢰감 – 그때의 나는 세상을 순수한 안목으로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믿었고, 존재 자체로 우주와 하나였다. 한없는 사랑과 평화의 느낌 안에서.
한때, 그렇게 완전하였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우매한 사람이 되어 이리도 불안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 걸까?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다 살아왔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내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 가족은 외갓집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와야 했기 때문이다.
산은 산, 물은 물, 화두를 되뇌어 본다. 잃어버린 나를 찾으러 갈 때가 되었다. 내 안에 깊이 숨어있는 나, 가깝고도 멀기만 한 것 같은, 진정한 나의 너를 찾으러.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 스스로 완전하다. 이제 마음의 색안경을 벗어 버리고 모든 것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산처럼 모두를 포용해야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야지.
구도의 염원도 버리고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길, 귀향!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