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이와의 추억

 

미영이는 초등학교 4학년 친구다. 나는 애와 친했. 왜냐하면, 애와 같은 집에 살았기 때문이다. 집은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아담한 한옥이었다. 우리가 본채에 살고 미영이네는 건너 채에 살았다. 그때 , 지방에서 전학해 시골뜨기였다. 그런데 마침 미영이 나와 같은 학년이라 우리는 친해졌다.

 

미영이는 부모님, 그리고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미영이 아버지는 키가 크고 보기 좋은 체격을 가진, 지금 생각해 보니, 지성인 같은 분이었다. 아마, 직업이 ㄷ일보 기자라고 들었던 같다. 미영 엄마는 숱이 많은 검은 머리와, 큼직큼직한 이목구비 생김으로  어딘지 강한 인상을 주었다. 미영 오빠는 아빠를 닮아 온순하고 조용한 편이었.  미영이는 부모님의 좋은 점만 닮았는지 키가 크고, 매력적인 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미영이와 나는 방과 매일 같이 놀았다. 애는 나를 좋아했고 마음이 유순해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신문지로  우리 나라 지형을  만들던 일이다. 그것은 여름 방학 숙제였다. 신문지를 물에 불려,  밀가루 반죽과 버무려 우리나라 지도 모양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산맥은 높게 줄을 세워주고, 강줄기도 나타내어 주었다. 물기가 마른 , 초록과 노랑, 고동색 물감을 칠해 산과 평야와 강줄기, 그리고 주요 도시를 표시했다. 미영이는 나보다 크게 만들었고, 내가 만든 것은 조금 작지만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재미있게 작업을 마친 햇볕에 물감이   마르도록 장독대에 기대어 세워 하룻저녁을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 아침에 나가 보니, 미영의 지도 모형이 부서지고 쑥대밭이 있었다. 간밤에 쥐가 와서 물어간 것이다. 미영이는 울상이 되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나의 지도는 하나도 다치지 않고 그대로 말라 있었다. 미영이 지도를 빌려달라고 하였다. 숙제 검사만 받고 바로 돌려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나는 망설이다 그렇게 없다고 하였다. 나도 숙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혹시 기원이 제때 돌려주지 못하면, 내가 곤란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빌려주지 않았던 일이 후회된다. 친구 좋다는 무언가? 나는 점에 대해 아직도 옹색한 마음에 미안하고 아쉬워 한다.

 

미영과  나는 거의 매일, 가까이 있는 사직공원으로 놀러 갔다. 거기에는 어린이 놀이터도 있었고, 율곡과 사임당의 동상, 사직단, 노인들을 위한 정자, 그리고 언덕을 올라가면 도서관과 스케이트 장이 있었다.

우리는 매일 공원에서 그네를 탔는데 번은 다른 친구들과 누가 높이 올라가나 경쟁이 붙었다. 나는 미영과 쌍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애가 하도 높이 구르는 바람에 겹이 내려달라 소리치며 그네를 내려오려 했지만, 가속도로 인해 바로 멈추지 못했다.  나의 무릎이 땅바닥에 닿으며 거친 모래에 갈려 피가 나도록 다쳤다. 그래서 나는 걸을 수가 없어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오른쪽 무릎에 그때 생긴 상처 자국이 아직 남아있다.

 

이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번은 미영이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미영과 함께 인왕산 자락으로 산행을 적이 있다. 깊은 속에 폭포수가 있었는데, 미영 아버지가 거기에서 순식간에 옷을 벗어버린 일이다. 아마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자 그랬나 보다. 나는 무심코 뒤따라가다 순간적으로 것을 보고 말았다. 나는 그때 남자의 그것을 처음 보았다. 깊은 폭포수 앞에서 마주친 장면은 어린 내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 마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영이 동네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 나는 아직도 시절을 가끔 생각한다. 골목에서 오제미 놀이, 고무줄놀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놀던 시절, 동네 조무래기 아이들이 나를 유독 좋아했었지.

그리고 ,   골목을 나가면 우리 꿈의 산실 같던 만화가게가 있었고, 건너엔  작은 오징어 튀김집도 있었다. 인자한 주인아주머니가 둥글고 넓은 튀김 앞에 앉아 즉석에서 튀겨주던 바삭바삭한 오징어튀김은 얼마나 맛있었던지.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서로 소식이 끊어졌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시절을 회상한다. 전에 우연히 여성 잡지를 들척이, 한국에서 유명한 모직 회사의 광고 모델로 나온 미영이를 보게 되었다. 모습 그대로 품위 있고, 개성 있는 그녀 모습이었다. 어릴 적부터 외모가 출중하더니 결국 길로 진출해,  그녀만의 인생을 잘살고 있음을 확인할 있어서 내심 반가웠다.

 

노년이 되어 어린 시절을 자주 회상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세속적으로 추구하던 많은 것들을 이제 내려놓았기 때문인가? 그때는 모르고 스쳐버렸던 순간순간들이 이제 이리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에서 위안을 찾아본다.

 

 

초원의

 

한때 그렇게 찬란했던 빛이

이제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한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아무것도 다시 되돌릴 없다 한들 어떠리.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원초적인 연민으로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

생기를 찾아 마음을 다스리며

죽음을 초월한 신앙의 힘으로

지혜로운 영혼을 가져다주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절대 슬퍼하지 않으며 속에

깊이 남겨진 오묘한 빛의 힘을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