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A Dream!

 

헬레나 배

 

 

 오늘은 미국 국경일 중의 하나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탄생일이다. 날마다 새롭지 않은 날이 있으랴마는 매년 이날이

되면 나는 어떤 각성 같은 것을 하게 된다. 1963년 8월 어느 날, 20만 명의 군중이 모여든 링컨 기념관 앞 광장에서 그가

연설하던 모습이 매년 이때가 되면 유난히 내 마음의 영상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그는 꿈꾸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어린 네 아이가 그들의 피부 색깔이 아니라 그들의 성품으로 평가받게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을 쟁취하기 위하여,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던 킹 목사의 모습은, 인도의 독립을 위하여 흰옷을 입고

조용히 물레를 잤던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전쟁을 위한 세금은 낼 수 없다고 단호히 선언하며 감옥에 갇히기조차 두려워

않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고귀한 영혼들의 행진으로 이어져 내 눈앞에 떠오른다. 

 

 이런 날은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걸어야 한다, 내가 살아 있다는 이 가슴 벅찬 사실과 자유롭고 정의로운 넋들을

기리기 위하여.

 

 연휴라 마침 집에 와 있던 딸아이와 함께 가까운 산에 오른다. 아름다운 날이다. 풀들은 새해를 맞아 더욱 푸르고 나무들도

빛나는 초록을 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산에만 몇 발자국 들여 놓아도 기분이 벌써 좋아지는 것 같다. 그간 흙의 색깔도 더

고와진 것 같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도 더없이 맑다.

 

 미술학도인 나의 딸아이는 푸른 빛깔을 띤 바위가 신기하다며 사진을 연신 찍어대기도 하고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모를 트리

하우스를 어린아이처럼 둘러보며 좋아한다. 공휴일이라 사람들이 제법 와있다. 이렇게 빈 마음으로 산길을 걷는 것이 나는

좋다. 자연 속에서 딸아이와 함께 발을 맞추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빠를 수가 있을까? 내가 낳은 아기가 이제 나보다 키도 크고, 잘하는 게 더

많고, 거기다 더 어른스럽기조차 하니 어찌 신기하고 대견스럽지 않겠는가?

 

 그녀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투박한 영어로 아무리 횡설수설해도, 다 들어주고 이해해 준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

에게 내가 최근에 본 영화와 책들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 그녀 또한 자신의 근황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런저런 연유로 졸업

이 늦어지고 있다. 시간제로 일도 하며 공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아주 어린 소녀 시절부터 자신을 ‘Artist-예술가’라고 자칭하여 왔는데 그런 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고해지는 것 같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건 나도 그랬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어떠한 문학작품 하나도 남기시지 않고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까지 끌어들여 우리가 예술가의 대를 잇고 있다는 공상에 빠져 있으니 이것은 또 웬 '억지'라고 해야 할지? ―

그건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수 권의 일기장이 남아 있었던 것을 할머니께서 불태워버리시던 광경을 목격한 내 어린 소녀

시절의 가슴 아픈 기억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의 친필이 가득하던 그 노트북을 되찾고 싶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몇몇 어른들을 선두로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M L King Jr. 목사의 희망의

메시지를 기억하기 위한 몸짓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들과 눈인사하며 옷깃을 스치며 산에서

내려왔다. 진정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넋이 살아 있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얼마나 흐뭇했을까? 그의 신념은 옳았다. 그의 꿈은

얼마나 빨리 실현되어가고 있는가?

 

 산을 다 내려와서 트레이더 조 마켓에 들러 딸아이가 좋아하는 먹거리를 잔뜩 사서 그녀의 차에 실어주었다. 막내로

아가처럼 자라온 그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이 내게는 좀 애처롭기도하여  이렇게 먹을 거라도 가득 안겨 보내면 어미

맘이 좀 덜 아릴지?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자축하고 서로 꼭 껴안아 준 후 각자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

 

 Yes, We Have 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