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줍습니다.
유숙자
아침을 여는 햇살과 들려 오는 소리를 사랑합니다.
하늘을 가득 안은 나무들 사이로 날갯짓하며 오르내리는 새들.
내 생애의 절정.
메마르고 허기진 감성을 푸른 그늘로, 보랏빛 꽃으로 보듬어 주던 여름을 생각합니다.
순간마다 뜰을 가득 채우는 향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모과꽃 연분홍 잎이 초록 풀 위에 그림처럼 놓이듯 깃든 오후.
아늑하고 정겨운 고요를 한차례 소나기가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갑상샘 기능항진으로 이상이 왔답니다.
36세의 젊은 여인은
연세의료원, 으슥하고 외진 지하 방사선 동위원소실 앞에서 벽을 향해 선체로 흐느끼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살포시 어깨를 감싸며 안아 주는 촉감에 움칫했습니다.
그곳은 특정 구역이라 일반인은 통행이 금지된 곳.
지나가던 의사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위로의 말을 건네었습니다.
마음이 병을 고친다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그의 손길이 따뜻했습니다.
온기가 혈류를 타고 온몸을 도는 듯 긴장이 서서히 풀렸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의사의 위로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모습을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유품이 될는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긴 머리를 잘랐습니다.
내가 봐도 이상한 헤어 스타일.
미용사에게 그냥 맡겼습니다.
친구는 눈이 슬퍼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 문우는 그 눈 속에 풍덩 빠지고 싶다 했습니다.
꽃물결 너머로 사라져간 세월의 어느 한 정점.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기억을 줍습니다.
이 사진이 올라와야겠지요?
이 고운 사진에 그런 사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