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하모니
유숙자
해거름 즈음에 산타 모니카에 도착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주말 저녁이면 친구 몇 가족이 이곳에서 식사하고 해변을 거닐었는데 나이 들어가며 이따금 씩, 그러다가 그 낭만이 기억 속의 그림으로만 남게 되었다. 오늘은 모처럼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리기에 음악과 바다를 함께 즐기려 서둘렀다. 바닷가를 거닐며 바다를 호흡한다. 진홍빛 노을로 타는 듯한 바다. 어느 임종이 저렇듯 찬란히 눈이 부실까. 시시각각 변모하는 빛의 위력, 낙조의 아름다움이 신비스럽다.
음악당 브로드 스테이지는 컨 템포러리 건축과 음향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Daniel Suk이 지휘하는 Symphonic Dreams가 The Broad Stage, Santa Monica에서 “꿈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오늘 공연이 시즌 마지막 연주로 프로그램 조합이 더할 수 없이 환상이다.
Tchaikovsky의 ‘Romeo and Juliet Overture-Fantasy’로 테이프를 끊었다.
이 곡은 대 작곡가 발라키레프의 암시를 받아 1869년 그가 원기 왕성한 장년 시대에 작곡했다. 환상적 서곡인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토대로 쓰인 4부 작이다. 원래 서곡이란 오페라가 본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극의 주요한 점을 음악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하나의 독립된 악곡으로 다루어 종래의 서곡과는 차별화 되게 하려고 '환상적'이라는 글자를 달았다.
이 곡은 종교적인 장중한 서주로 시작되다가 거칠고 격앙된 반복의 테마로 바뀌는데 몬테규와 태플렛 두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격투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소란은 사라지고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나오며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테마로 변환된다. 음악은 반목의 테마와 사랑의 테마가 서로 얽혀 비극적 색채가 짙어지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청순하고 아름다운 테마와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프의 분산 음이 인상적이다. 차이콥스키가 아직 원기 넘치던 장년 시대에 작곡하기도 했지만, 이 무렵 오페라 가수 테지레 아르토와 연애로 정열이 끓고 있었으므로 이런 비련의 걸작을 작곡할 수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발레로도 유명한데 프로코피예프가 발레 음악( Op. 64)을 작곡했다. 여러 안무가의 손을 거쳐 가장 근래까지 많이 사용하는 안무는 Kenneth MacMillan’s의 작품이다. 이 공연을 런던에서 처음 감상했을 때 Wayne Eagling과 Alessandra Ferri가 주역을 맡았다. 당시 Feeri의 나이가 18세였는데 지금까지 감상한 줄리엣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연이었음은 물론, 줄리엣의 영혼을 덧입은 것처럼 감성과 테크닉의 극치를 이루었다.
Saint -’Saens Introduction and Rondo Capriccioso in A Minor, Op. 28.’ 두 번째 곡이다. Zika Huang의 바이올린 솔로로 감상했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바이올린의 특성을 살려서 들려주기 위한 명곡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바이올린의 명수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으로 고도의 테크닉과 우아함을 요구한다. 솔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데뷔 때나 연주회 때 자신의 기량을 뽑내려 선호하는 곡이기도 하다.
생상이 24세 때 사라사테가 처음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 소년의 나이는 15세. 생상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봄날처럼 신선하고 앳된 모습이었지. 세상에 제일 쉬운 일을 말하듯 이러더군.’
‘내게 협주곡을 좀 써주시지 않겠어요?’
생상스는 사라사테와 깊이 교제했던 친구로서, 음악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소산으로 작곡한 곡이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이다. 사라사테 풍의 화려한 바이올린 기교가 짙게 깔렸을 뿐만 아니라 생상 특유의 프랑스 정서가 넘쳐난다. 생상은 15세 어린 소년의 부탁을 정중하게 받아들여 사라사테를 위해 바이올린협주곡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작곡해 그에게 헌정했다. 생상스 시대에 인기 있는 작곡가들이 앞다투어 사라사테에게 곡을 바칠 정도였다.
우울하고 느린 서주부로 시작되어서 우아함이 전개되며 론도로 들어간다. 무곡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카프리치오소 형식이 변화와 광채를 더해 준다. 이 곡의 연주자로 가장 감동을 준 사람은 ’Yehudi Menuhin’이라 하겠다. 아인슈타인도 그의 연주를 듣고 천재라고 인정했던 것처럼 Menuhin의 연주는 단연 차별화 된 극세공품 같은 연주이다.
우리나라 연주자 중에는 ‘Sarah Chang’이 Wald Buhne에서 베를린 관현악단과의 연주로 펼쳤던 무대가 관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었다. Placido Domingo가 지휘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던 것이 인상에 남는다.
Dvorak의 Symphony No.9 in E Minor ’From The New World Op. 95,’ 오늘의 피날레를 장식한 음악이다. 주로 2악장만을 듣다가 오랜만에 전곡을 듣게 되었다.
모국인 체코를 떠나 거대한 뉴욕의 거리와 살아 숨 쉬는 부두 등 신세계에서 느낀 강력하고 활기찬 인상. 미국의 광활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은 그의 창작 의욕을 자극하게 된다.
2악장 ‘Going home’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요와 흑인 영가의 애절한 보헤미안 향수와 어우러져 듣는 이로 하여금 그리운 고향의 풍경을 생각나게 한다. 잉글리쉬 호른으로 노래하는 2악장 선율은 무척 아름다운 서정적인 곡이라 이 곡에 가사를 붙여 합창곡으로 편곡한 것이 ‘꿈속의 고향’(Going hom)이다.
연전에 보았던 리베라 소년합창단이 부른 ‘Going home’은 한 음절씩 나누어 부르며 전체적인 통합을 이루는데 그 하모니가 숨소리조차 빨려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날 ‘신세계로부터’를 더 깊은 감동으로 몰아간 것은 신들린 사람처럼 지휘하던 다니엘 석의 열정 속으로 빨려들었던 탓이다. 제단의 제물이 활활 타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미샤 엘만의 신기에 가까운 바이올린 연주가 아주 짧은 순간 그의 지휘에 겹쳐짐을 보았다.
수년 전 어느 교회에서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셨던 분의 일주기 추도식에 목사님이 좋아하시던 찬송가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를 찬양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그때도 감동이 물결처럼 일었었다.
오페라나 발레처럼 전곡이 아닌 이상 음악회의 프로그램은 선호하는 곡이 한두 곡만 있어도 행복하다. 오늘 세 개의 연주 작품은 클래식 마니아라면 누구나 열광하는 프로그램의 조합이어서 대만족이었다.
돌아오는 길. 내 영혼은 천상을 날고 있다. 선선해진 기온이 더욱 쾌적함을 선사해 주는 밤. 밤이 깊을수록 별빛은 시리게 푸르러가고 내 몸도 발광채가 된다. 이마를 때릴 듯이 쏟아져 내리는 별. 별들이 부르는 쏘나타가 밤의 찬가를 연주한다. 음악과 별과 내가 밤 바다에 부서지는 빛 소나기였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