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 그린 5선   

                                                                                             유숙자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 그것이 무에 그리 대수로운 일일까마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따른다. 처음에는 CD player에 1개의 CD를 넣고 듣다가, 여러 개를 한꺼번에 넣고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 나왔을 때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기뻤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IT산업은 컴퓨터에 음악을 입력하여 한 번 클릭만으로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유성기(축음기)가 있었다. 아버지께서 음악을 좋아하셔서 여러 종류의 판(음반)이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 감상하실 때면 우리 형제들은 숨을 죽여야 했다.  

    유성기는 구식 자동차 엔진 감듯 태엽을 오른쪽으로 돌려 감아 놓고 판을 올려놓으면 돌아간다. 그 위에 바늘 머리를 조심스럽게 얹어 놓는다. 30여 분 판이 돌아가다 음악이 느려지기 시작하면 태엽이 풀렸다는 신호이다. 음악을 감상하다가도 중간중간 태엽을 감아 주어야 음률이 고르게 유지된다. 자칫 시간을 놓치면 음악이 끊긴다. 판에 홈이 깊게 패기 전에 바늘도 자주 갈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불편 한 점이다. 아버지 덕분에 음악을 듣고 자랐기에 청음이 발달하였고 멜로디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몇 곡의 소품이 있다. 잔잔하고 은은하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음악. 매일 들어도 부담 없이 새로운 기분을 안겨주는 곡이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Standchen D957. No.4 ) 작년 가을 첼로모음곡을 감상하던 중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심오한 연주가 있었다. 카미유 토마(Camille Thomas)의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였다. 프랑스의 떠오르는 첼리스트로 알았을 뿐, 연주를 대하기는 처음이었다. 그의 연주는 기술적인 완벽함은 물론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빼어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전율이 일었다. 극도의 고독과 슬픔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연주에 감동하여, 나는 그에게 노래를 바쳤다.

    “명랑한 저 달빛 아래 들리는 소리 / 무슨 비밀 여기 있어 소근 거리나 / 만날 언약 맺은 우리 달 밝은 밤에, 달 밝은 밤에”. 우리가 즐겨 부르던 노래였으나 루트비히 렐스타브의 시 사이에 간격이 있었다.

 

    본래 세레나데는 '저녁 음악'(소야곡)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궁정 연회에서 여흥을 위해 연주되었다. 우리에게는 연인의 집 창 밑에 서서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사랑의 노래로 널리 알려졌다. 세레나데가 탄생한 유래에 대하여 슈베르트 자서전 작가인 폰 헬본(Von Hellborn)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남기었다.

 

    1826년 여름 어느 날, 슈베르트는 친구들과 함께 벨링가를 걷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자기 친구 띠째가 비어자크라는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슈베르트는 일행을 데리고 들어갔다. 띠째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었다. 슈베르트가 가까이 가서 그 책의 페이지를 넘겨 보다가 셰익스피어의 시를 발견했다.

    “셰익스피어의 시를 보니 얼마 전에 헤어진 테레제와의 악상이 떠오르는군. 누가 5선 지 노트를 가지고 있나?” 그러자 한 친구가 손님이 놓고 간 계산서를 건네주었고 슈베르트는 계산서 뒷면에 5선을 긋고 멜로디를 적기 시작했다. 종업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하프 소리가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불후의 명작 세레나데가 탄생하였다.

 

    “부드럽게 간청하여라 나의 노래여 / 밤을 뚫고 그대에게 날아가서 / 저 아래 조용한 작은 숲으로 / 사랑하는 사람아, 오라 나에게”---.

    독일의 낭만파 시인 루트비히 렐스타브(Ludwig Relstab)의 시에 곡을 붙인 세레나데는 독일 가곡 장르에서 명곡으로 꼽힌다. 선율이 청순하고 고요와 그리움이 배어 있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음악사상 기념비적인 명곡이다. 성악곡으로는 Three Tenors의 호흡이 감동적이었고 리스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것이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쇼팽의 녹턴 작품 9-1. (Nocturne in B flat minor Op.9 No.1) 쇼팽은 1831년 작품인 이 곡을 카뮈 플레이엘 부인(Madame Camile Pleyel)에게 헌정했다. 그의 피아노곡들은 사람의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매혹적인 멜로디여서 서정시를 읊는 듯하다는 평을 듣는다.

    쇼팽은 녹턴을 “피아노로 부르는 노래”라고 여겼다. 영국의 작곡가 존 필드에 의해서 창시된 녹턴은 밤의 정적과 우아한 선율을 연주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쓸쓸함조차 감미롭게 만드는 아름다움. 대담한 조 바뀜을 하면서 곡의 매력을 더한다.

 

    마르타 아르게리히를 비롯해 많은 연주를 들었으나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Vladimir Ashkenazy)의 연주는 감동의 극치로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렀다. 그는 생존해 있는 피아니스트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근래에는 손가락 관절염으로 지휘에만 전념하고 있어 더는 그의 콘서트를 관람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드라마틱한 영상으로 보았던 녹턴 9-1이 있다. 고전적 우아한 분위기의 거실에서 포르투갈의 보석이라 불리는 마리아 호앙 피레스((Maria Joao Pires)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피아노 위에는 수없이 많은 촛불이 너울거리며 연주의 물결을 탄다. 잠자던 어린 소녀가 꿈결 같이 들려 오는 피아노 소리에 눈을 뜬다.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매혹적인 선율에 이끌리어 춤을 춘다. 여인과 소녀가 하나 되어 거실을 돌며 춤춘다. 이윽고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에 이끌린 듯 숲 속이다. 밤하늘에 휘영청 달이 밝고 흐드러지게 쏟아지는 별빛.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내 마음이 받았다. 낭만과 여유를 누리며 몽환의 세계로 빠져든다.

 

    들드라의 추억. (Souvenir For Violin and Piano in D major) 이 곡에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전 클래식 음반이 귀했던 시절에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남산 KBS한국방송에서 녹음해왔다. 어느 해 가을, 들드라(Drdla)의 추억을 공연할 때다. 첫날 저녁 무대에 올려진 4인무. 백색 튀튀에 연보랏빛 조명을 받으니 무대가 환상이었다. 나는 님프처럼 가볍게, 나는 듯 춤을 추었다. 무용과 음악이 정점을 향해 달릴 때쯤 갑자기 테이프가 끊어졌다. 관중석에서 아- 하는 안타까움과 박수 소리가 극장을 울렸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정신없이 멍하니 서 있다가 불랴사랴 인사를 마치고 들어왔다.

1년 이상, 발톱이 빠져가며 연습을 거듭했건만 첫날 두 번째 무대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사흘 공연이어서 다시 녹음해 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여 4인무는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순서에서 빠지는 비운을 겪었다. 는 다른 작품에도 출연하기에 나름대로 위로 받았으나 들드라의 추억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추억”을 작곡한 들드라는 시간이 날 때마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모차르트가 잠들어 있는 빈의 중앙묘지를 찾아가 영원한 음악의 스승들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멜로디가 바로 이 곡이다. 들드라는 그 선율을 놓칠세라 떨어져 있는 낙엽을 주어 5선을 그리고 추억의 주제를 하나하나 심었다. 전차를 타고 슈베르트 묘지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손에 쥔 전차표에도 적었다.

 

    체코에서 태어난 그는 250여 개의 바이올린 곡을 작곡했다. 그가 1899년부터 유럽에서 시작한 연주는 1923년 미국까지 연주여행을 계속하여 바이올린 연주자로 이름을 떨쳤다.

    추억곡명에서 말해 주듯이 회상적이어서 지나간 날들을 아련한 그리움 속으로 젖어들게 한다. 애잔하면서 부드럽고 고요와 안정과 여유를 주기에 명상음악으로 사랑받는다. 추억은 쿠벨릭 세레나데와 함께 들드라의 이름을 후세에 남겨주는 대표작이 되었다. 20세기 바이올린의 황제, 바이올린의 전설로 불리는 얏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의 신기에 가까운 연주가 우리 귀에 익숙하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LP와 CD도 사들인 장소와 서려 있는 추억이 다르다. 아직 잘 돌아가는 턴테이블과 앰프에 감사한다. 32년이 되었으나 하자가 없다. 비 오는 날 들으면 제격인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는 촛불을 켜놓고 LP로 들어야 제맛이 난다. 실의와 병고와 곤궁 속에 만들어진 불후의 명 가곡이기에 비와 촛불과 커피의 향기가 잘 어우러진다. 거실 가장 편안한 자리에 좌정해 계신 작곡가들과 영적 교류를 나눈 지 어언 50여 년이 지났으나 지금도 나는 그들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뛰고 마음이 설렌다. 음악은 영혼의 떨림이고 삶의 원천이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