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꿈이었던가
오케스트라의 튜닝이 한창이다. 막이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 토슈즈(Toe Shoes) 끈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내 생애 마지막 공연이라 오래전 첫 무대에 섰을 때만큼 설렌다. 이번 공연을 위해 러시아에서 키로프 발레단 수석 무용수 콘스탄틴 자클린스키(Konstantin Zaklinsky)가 와 주었다. 나의 은퇴를 축하하고 함께 공연하기 위해서다. 얼마나 그려왔던가. 자클린스키와 단 한 번만이라도 파드되를 출 수 있다면. 그가 갈리나 메젠체파(Galina Mezentseva)와 공연한 지젤(Giselle)을 VHS 시절부터 DVD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감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춤에는 영적 교감이 있어 호흡이 완벽했고 연기력과 기량이 뛰어나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내가 공연할 발레는 ‘백조의 호수’ 3막이다. 백조의 호수 중 가장 화려한 무대이다. 백조로부터 왕자의 마음을 빼앗으려 온갖 요염한 자태를 다 동원하여 유혹하는 흑조. 고난도의 테크닉 그랑 푸에테 앙 투르낭(Grand Fouette En Tournt) 32회전을 무난히 마쳐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막이 올랐다. 스페인, 이탈리아, 헝거리, 폴란드의 민속춤이 이어지고 파드되로 그와 호흡을 맞추었다. 드디어 그랑 푸에테 앙 투르낭의 회전을 시도하려 사뿐히 걸어 나왔다. 고별 공연이라는 부담감이 있으나 의외로 최상의 컨디션이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목표물을 보고 돌고, 보고 도는 게 아니라 누가 돌려주듯이 저절로 돌아간다. 32회전을 마쳤는데 조금도 지치지 않고 계속 돌고 있다. 오케스트라도 나의 회전에 맞춰 연주한다. 상대방에게 무대를 내주어야 하는데도 회전이 끊이지 않는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그 열광이 Standing Ovation으로 이어졌다. 꽃이 날아들고 내 춤에 감동한 관객들의 환호가 어찌나 열광적이었던지 눈이 번쩍 떠졌다.
아! 꿈이었던가. 가볍게 그랑 푸에테 앙 투르낭을 하던 내 다리가 높게 올려져 있다. 무대도 관객도 사라지고 퉁퉁 부어 있는 다리만 보인다. 예전 발레를 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된 다리. 동글고 예쁘던 무릎 중앙에 길게 그어진 수술 자리가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엘레베이션 상태로 누워 있다가 깜빡 잠든 사이 자클린스키가 위문 차 다녀갔다. 젊은 시절에도 가당치 않았던 꿈이 생생하게 이루어졌다. 오수를 제대로 즐긴 셈이라고 해야 하나. 발레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 시절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건만 발레는 항상 내 마음속에서 지나간 상처의 괴로움 같이 나를 괴롭혔다. 가슴앓이하며 지냈던 숱한 세월, 그 보상을 오늘 거창하게 받았으나 왠지 자꾸만 눈물이 난다.
3년여를 통증으로 고생하다 6개월 간격으로 두 무릎을 수술받았다. 우리 어머니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의학 기술의 발달로 연골을 교체했다. 수술도 어려웠지만, 회복이 무척 더디고 힘들었다. 계속 운동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지난 1년여 회복 기간이 10년처럼 길었다. 다리가 너무 부어서 앉아 있는 것, 서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회복하는 긴 시간 동안 삶이, 인생관이 바뀌었다. 건강과 감사만이 삶의 전부이다. 다른 아무 생각도 없다. 통증과 부자유에서 속히 벗어나 마음껏 걷고 싶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살아 있는 마지막 날처럼 여기며 다시 깨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후회 없이 보내고 잠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의 무관심이다. 혹독한 고통과 회복 과정을 통하여 터득한 지혜는 인생 별 것 아님을 절절히 느끼면서 미미하고 소박한 소망을 바라 꿈을 꾸었다.
가장 어려운 상태에 처해 있을 때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그들은 신의 사랑으로 나를 돌봐 주었다. 내가 남을 위해서 한 것이 많지 않기에 부끄럽기 한이 없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Mackintosh Amplifier를 갖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꿈이 내 42회 생일에 이루어졌다. 영국에서 살 때 남편이 매킨토시 앰플리화이어를 미국에서 수입하여 선물해 주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쁨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음악에 빠져 때로는 생활비를 몽땅 가지고 나가 LP와 CD를 사고 냉장고 속 저장 음식으로 버틴 적도 있었던 나. 이곳에 온 지 30여 년을 지나는 동안에도 꾸준히 음반과 발레 DVD를 계속 수집했다. 친구들 말이 나의 음악실에는 흔히 클래식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음반들이 거의 갖추어져 있다고 부러워했다. 음악 시스템은 나의 재산 목록 1호이다.
아끼고 사랑하던 재산 목록 1호가 육신의 고통 앞에서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귀한 것들이 무용지물처럼 보였다. 알뜰살뜰 돈 아껴가며 무한 투자를 했건만, 두 무릎이 내 생각과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들은 나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이, 귀를 황홀하게 해주던 음반이 내 고통을 조금도 덜어줄 수 없었다. 당장 아픔을 멈출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그 약 한 알과 기꺼이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통의 과정을 거쳐 수술과 긴 회복 기간을 지나는 동안 ‘밥은 굶어도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던 신조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리도 아끼던 소장품들이 나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 무관심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언어는 ‘감사’이다.
카우치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서 1년여를 지냈다. 자카란다가 잎이 돋고 꽃을 피우며, 꽃잎을 흩날리는 보랏빛 낙화를 보며 삶은 무시로 아픈 것이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계절은 뚜렷한 색채 없이도 바뀌어 갔다. 참으로 오래 살았고 멀리에 와 있다고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한창 젊은 나이에 한국을 떠났다. 그때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없던 시절이라 친구들이 유럽 지사 주재원으로 나가게 된 우리 가족을 부러워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세월이 흘렀다. 그때 헤어진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 꾸었던 꿈들이 이루어져 보람의 열매를 거두었을까. 옛 친구들이 그립고 그 시절이 그리워 눈물이 난다.
지젤 DVD를 걸었다. 조금 전까지 내 곁에서 파드되를 추던 자클린스키가 시 공간을 넘어 메젠체파와 춤을 추고 있다. 가슴 시린 2막을 감상한다.
눈을 감는다. 꿈꾸며 기다리던 바람이 이루어진 오늘. 꿈이여 다시 한번. 빠르게 빠 드 부레(Pas De Bourree) 하며 나의 왕자님 곁으로 다가간다. 낮 꿈이 다시 이어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