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나와 너
유숙자
인간 사회는 물리적 힘이 지배하는 자연상태와 달리 모두의 약속인 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또한, 사람은 그의 준하는 지시로 살지 않으면 안 될 정신적 존재이다. 좁게는 자기 자신에게 떳떳해야 하고 자녀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사회에서도 올바르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근자에 지면을 장식한 쓰레기 만두 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자신도 희생자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건강식품에 관심이 많은 웰빙시대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웰빙(well–being)의 소리가 높아지면서 재래농법으로 재배하는 농산물의 오염도가 높다고 주위에서 유기농 식품을 권하고 있다. 유기농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일반 식품보다 가격 차이가 크다. 매일 먹는 채소나 과일 등을 어찌 다 대처할 수 있단 말인가. 어디 그뿐인가.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은 식품과 저지방, 저 칼로리 식품을 골라야 하는 주부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다. 다만 일일이 좋은 것을 갖추어 먹지 못한다 해도 이제까지 별 탈이 없었으니 앞으로도 잘 견디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현대인들은 잘살기보다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대기오염과 공해, 불량 식품에 시달리면서 힘겹게 살고 있는 탓이다. 이 마당에 폐기 처분해야 할 식품을 버젓이 내놓고 국민을 우롱한 사건은 할 말을 잃게 한다. 한 마디로 돈에 눈이 먼,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행동이다. 어른, 아이 모두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이용하여 사욕을 채운 무리는 중벌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 들여가며 일빙(ill-being)의 피해를 본 셈이니까.
몇 년 전, 유해 고춧가루 사건으로 한동안 사회가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적발된 상인은 고추씨와 공업용 유해 색소를 첨가해 만든 고춧가루를 시판했다. 상점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다른 곳에 숨겨 놓은 고춧가루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가족이 먹을 고춧가루라고 고백하여 다시 한번 손가락질받았다. 만두도 따로 만들어 먹었을까?
요즘들어 집중적으로 파헤친 메디칼 비리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줄곧 대두하였던 이슈였으나 환자와 의료기관이 공생관계로 얽혀 뿌리가 뽑히지 않고 있다. 의식 있는 사람이 개탄하는 소리가 높았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그때뿐이었다. 의료 종사자나 환자가 공동의식을 가지고 책임 있는 행동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더 해요.” 하며 자신들의 부당한 행위를 덮으려고 하는 것부터 고쳐야겠다.
메디칼 남용 비리, 원정 출산, 마사지 팔러, 가짜상품, 마약제조 같은 불명예스런 것에 한인이 거론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민족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한인만큼은 정직과 신용으로 부지런히 살아가는 좋은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타민족에게 보여 주자.
사람이면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이루며 살기 원한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사람답게 잘 살다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사회에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할지언정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잘 살며 사회적 명망 또한 얻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영혼이라는 정신의 실재가 보다 강력하게 우리의 생을 좌우해야 한다. 욕망의 지배를 극복하고 벗어나서 내 의지와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결실이라야 행복할 수 있다. 떳떳하지 못하게 이룩한 부는 불안의 요소일 뿐이다.
순자의 말 중에 ”물과 불에는 기가 있으나 생명이 없고, 풀과 나무에는 생명이 있으나 지각이 없고, 금수에는 지각은 있으나 정의가 없다. 사람에게 만큼는 기가 있고, 생명이 있고, 지각이 있고, 또 정의가 있으므로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 ”라고 했다.
원래 웰빙은 보보스(Bobos)족의 삶의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미국의 새로운 상류계급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근래에는 건강 트랜드의 의식주뿐 아니라 상업 부분까지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값비싼 유기농 채소를 먹는 것이 웰빙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며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웰빙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변화는 사회적이든 인간적이든 새로운 의식에서 비롯된다. 정의가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속성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신뢰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된다면 웰빙을 따로 생각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