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소묘
유숙자
남가주에 겨울비가 풍성하다.
수년 동안 가뭄에 시달려 가로수가 잎이 마르고 잔디가 누렇게 죽었는데 이 겨울, 우기에 맞게 연일 비가 내린다. 도시의 먼지를 말끔히 씻어주는 빗소리가 싱그럽다. 커피를 들고 창가에 서서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한가로운 정경에 평안이 깃든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흐르네 / 내 마음 속에 스며드는 이 우울함은 무엇일까?’
베를렌의 시구가 귀에 어려 음악처럼 흘러내린다. 이런 날 들으면 제격인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를 턴테이블에 걸었다. 비극적 분위기의 멜랑콜리한 첼로 음률. 고독의 슬픔이 잦아드는 낮고 깊은 멜로디가 늪처럼 고인다. 이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월을 함께 나눈 친구라면 더 좋겠지. 텔레파시가 통했나? 한 친구가 빗방울이 구슬처럼 맺혀있는 매화 꽃가지를 전송해 주었다. 매화만큼이나 심성이 고운 친구다.
비 오는 날은 습관처럼 촛불을 밝힌다.
황금색 밀초는 아니더라도 굵은 초가 밝혀주는 은은한 빛은 아늑하고 신비해서 좋다. 촛불을 은총처럼 덧입은 캔디부케와 장미가 어우러져 거실의 분위기를 더한다.
며칠 전 결혼 50주년을 맞았다. 그즈음 가깝게 지내는 친지 몇 분이 축하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K 목사님 내외분께서 금혼식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달린 진기한 선물을 주셨다. 사모님께서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고하고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예쁜 막대 캔디 50개를 구하여 장미 모양의 부케를 만들어 주셨다. 캔디 하나하나를 싸서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아 주셨기에 부케를 받으며 눈물이 났다.
꽃을 좋아하는 내게 붉은 장미 50송이를 품에 안겨 주던 후배의 정성은 어떤가. 평소에도 이따금 계절에 맞는 꽃을 한 아름 안고, 꽃보다 더 환한 미소를 띠며 지극 정성 방문해 주는 후배. 그의 살뜰한 보살핌이 있었기에 수술 후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축하의 자리에 함께 참석하고 영양 간식을 챙겨와 한아름 건네 주던 K의 배려 또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얼굴 만큼이나 마음도 고운 문우다. 비를 보며 풍성한 감상에 젖을 수 있어 이 시간이 좋다. 혼자 있어도 행복하다.
비 오는 날은 추억 여행을 떠난다.
‘우리 만났지. 아주 오랜 적 친구인 우리.
10살 20살 같이 보낸 우리가 이제 내일 모래 60인 채로 가을 불붙는 단풍의 색깔로 변해있는 모습.
흑백 사진 속의 단발머리 소녀. 그 눈빛, 웃음은 여전한데 꼭꼭 숨어버린 세월이 잡힐 듯 보일 듯 앞을 가리네.
진초록 빛깔이 그리운 건 아니련만 가슴 속 울렁이는 아린 이 울림.
내일모레 약속하지 말자며 메마른 손등에 남겨 놓은 우리의 입맞춤.
하얀 종이 위에 무수한 낙엽을 떨구면서 빨강 파랑 노랑 그립게 서럽게 물감들이네.’
60을 바라보던 어느 날 친구와 한 줄씩 번갈아 써 내려간 글. 우리는 <그림>이라는 시제를 붙여 한 장씩 나누었다, 10살에 만나 긴 세월을 다져온 젊은 시절 이야기이다. 지금도 만나면 알 수 없는 미래를 설렘 속에 맞자며 철없는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미 내 두 다리에는 본의 아니게 철이 들어 있기에 철이 들고 말았다.
옛친구를 옛날의 시간 속에서 떠올리며 가슴 적셔주는 우정이 한 송이 꽃처럼 눈부시다. 세월이 몇십 년 흘러도 마르지 않고 구겨지지도 않고 단단해지지도 않은 친구의 투명한 영혼이 신선한 바람처럼 나를 눈뜨게 하고 시가 되어 내 영혼을 흔든다. 가슴 저린 그리움이 있어 흑백 영화 시절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가 보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