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일선물
생일 선물로 여행을 다녀온 지라 이번 생일은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언제부터인지 내 생일을 지내고 안 지내는 것은 내 마음과 달리 아이들의 뜻에 따르게 된다. 사위는 노동절 휴가 때 필리핀 선교를 다녀와 다음 날부터 근무를 시작한 지라 피곤이 풀리지 않은 상태라서 마음에 걸렸다. 여름철이라 밖에서 바비큐를 하고 몇 가지 잘하는 음식은 전적으로 사위의 몫이다. 그 외의 것은 딸의 친구 세 커플이 해마다 맡아서 한다, 동생들, 남편의 친구 부부, 이웃집 사람들이 참석했다.
음식 냄새가 집안에 퍼지고 직장에서 늦게 돌아온 아들 내외가 쌍둥이인 두 손자를 데리고 도착하면 본격적인 파티는 시작된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담소를 나누다, 다음 달이면 두 살이 되는 쌍둥이의 재롱으로 웃음꽃을 피우면 모두 두 아이에게 집중된다.
그곳에서 아무 무리에도 끼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 딸의 하나뿐인 8살짜리 손녀다. 사촌 동생인 쌍둥이 이삭. 이안이 하고 어울리긴 아직 말이 통하지 않고 어른들과도 어울릴 수도 없다. 그래도 늘 혼자 잘 논다. 손녀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해서 아까부터 무언가 만들고 있다. 언뜻 보니 뜰에 나가 레몬을 한 봉지 따와 쥬서기에 즙을 짜고 있다. 늘 무언가를 만들고 있으니 아무도 묻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나중에 보니 작은 상자 위에 빨대가 꽂힌 레몬주스가 든 컵들이 주르르 놓여있다. 상자 위엔 사인이 붙어있다. ‘cash only’ $1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기발한 아이디어에 웃음보를 터트리며 기꺼이 1불을 내고 맛을 보았다. 방금 따온 레몬 주스에 꿀과 물을 넣어 상큼하고 달근한 맛이 어느 음료보다 신선하다.
손녀는 가끔 우유 위에 계핏가루를 뿌려 모양을 낸다거나 치즈와 우유를 섞어 정체불명의 엉뚱한 음식을 만들어 우리에게 시식하기를 권한다
그는 혼자 노는 방법은 안다. 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재료들을 꺼내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들을 만들거나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한군데 앉아 오랫동안 책을 읽은 방법이다. 한글로 되어 있는 책은 잘 읽지만 쓰기에는 아직도 가끔 틀린 맞춤법이 있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손님들이 돌아가자 손녀딸이 빈 티슈 상자에 종이를 붙이고 리본이 메어 있는 상자를 생일 선물이라며 나에게 내민다. 아까부터 혼자 앉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별이 그려진 밑그림 위에 ** 할머니, 생일추카해요. 이 섬물은요 special 해요**. Coupon을 쓰면 그것을 할거에요. 사랑해요 할머니.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라요. Love Ellie.
상자 속에 손을 넣자 편지와 함께 free coupon 이라고 쓰인 봉투 안에 10장의 쿠폰이 나온다. back massage, I hug of Joy. No more mess, kisses for life, take care of Rax, no phone 1 hour, laundry, cook you something, dishes.
편지와 쿠폰을 펼쳐 놓고 한동안 들여다본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까? 눈물인지 기쁨인지 가슴을 따뜻하게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