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은 크고 작은 일의 끝없는 연속이다. 자고 나면 또 다른 일거리로 하루가 짧다.

며칠 전 손녀와 함께 피오 피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두 권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오며 가며 곁눈질만 한다.

킨더 가든에 다니는 손녀가 2주간의 봄방학이 시작되어 내 차지가 되었다. 이번 방학에는 학교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매일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

방학 사 일째 되던 날, 피오 피코 도서관에 손녀를 데리고 갔다. 한국에서 보내준 기초과정의 한글책과 동화책, 이곳에서 구입한 미처 보지 못한 책들이 있음에도 도서관이란 어떤 곳이며 책에 대한 친밀감과 흥미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사실 나 역시 늘 지나치기만 했던 그 도서관에 처음 가보았다.

대여 카드를 만들고 규칙 사항 설명을 들은 후 아동열람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아이는 도서관 안을 대충 둘러보더니 한국어로 된 책 한 권을 들고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한다.  이른 나이에 한국어를 가르쳐서인지 여섯 살인데도 몇 어려운 낱말 외에는 제법 잘 읽고 쓴다. 집에서는 늘 한국말을 하던 아이가 요즈음 외국 아이들만 있는 킨더 가든에 들어가더니 집에 와서도 영어로 말을 한다, 그럴 때 짐직 못 들은 척 하면 곧 눈치채고 다시 한국말을 하여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늦게 이민 온 내 경험으로 어른이 되어서 습득하려고 한 외국어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손녀에게는 한국말이 외국어가 될 터이고 영어는 일상어가 될 터이므로, 그의 부모가 한국 사람이고 우리의 뿌리가 한국인이기에 한국말과 글을 읽고 쓰는데 당연히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것을 가르치는 일은 부모의 책임이다. 일찍 이민 온 자녀들이 겉은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말을 할 줄 몰라 부모 하고도 어설픈 우리말 몇 마디와 영어를 섞어 의사소통하는 경우를 볼 때 안타깝다.

외국어를 습득하게 하는 것은 재산을 물려 주는것 보다 값지다고 했다, 재산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지만, 책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는 평생의 자산이 될 것이다.

스웨덴 연구팀에 의하면 어릴 때 외국어를 배우면 원어민 발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모국어의 방해를 더 적게 받기 때문이란다. 어린아이가 발음의 미묘한 차이나 억양을 구별하기에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인지능력에 차이가 없다면 65-80과 20-30대 그룹 간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고도 한다. 모국어의 구사를 알고 있기에 이를 조직화하는데 더 익숙하다는 뜻이다. 결국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 부여다. 나이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의지를 갖고 배워야만 가능하다.

여섯 살짜리 손녀가 고른 8권의 책은 모두 영어로 된 얇은 동화책이었다.

벌써부터 영어가 더 익숙한지도 모른다. 한글로 된 책을 고르지는 않았지만 책에 흥미를 느끼고 생활화, 습관화하여 우리 글과 말도 자연스럽게 익히기를 바란다.

04 02 2017: 할머니랑 증조할머니랑 아메리카나 몰에 갔다. 킨더 쵸코렛과 캔디가 많았다,

                    시나몬 빵을 먹었다. 아메리카나에서 스시도 먹었다. 분수도 보고 이스터 데코레이션도  보았다. 재미있었다.

손녀가 처음 써 본 4번째 한국어 일기다. 방학 동안 만큼은 일기 쓰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 틀린 글자를 빨간 색연필로 고쳐 쓴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반 토막 어설픈 대화가 아닌 한국 사람다운 한국어를 구사하고 그의 자녀 대대로 우리말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봄이 되었으니 컬리지에 나가 영어 클래스에 등록해야겠다. 육십 대와 이삼십대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별 차이가 없다고 하니 나이 타령은 그만하고 부족한 영어공부나 해 볼까.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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