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렌드 케니언을 다시 보다.
인간이 만들어 낸 피조물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렌드 캐니언 앞에 서면 침묵으로 압도된다. 눈앞에 펼쳐있는 거대하고 경이로운 비경은 우리들의 일상을 서늘하게 환기한다. 한동안 호흡을 가다듬는다. 캐니언의 규모와 협곡의 모양과 아름다운 암반의 색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함과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자연의 엄숙함에 어쩔 수 없는 미약한 존재로서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 진다.
그랜드 케니언 노스림 포인트에 서자, 맞은편에 보이는 퇴적암이 무지게 시루떡 처럼 거대하게 옆으로 펼쳐져 계단 모양으로 겹겹이 쌓여 있다. 오랜 침식과 풍화 작용에 의해 바위들이 마치 전위 예술가의 건축물을 보는 것 같다.
가장 젊은 표면의 지층에서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오래된 암반이 층마다 다른 색상을 나타내어 지질의 단면을 뚜렸하게 보여준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러야 지층이 변화를 이르키고 또다른 색상을 만들어낸 것일까?
햇빛에 반짝이는 흰눈 같은 색, 연한 핑크, 짙고 옅은 갈색, 보라, 붉은, 크림색, 오렌지색 ….
어느 것 하나 튀는 색이 없다. 은근하고 차분하다. 사람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색상이 아닌.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쓰는지 모른다.
아리조나 주 고원지대, 넓은 땅 일부가 솟아올라 협곡이 생기고 협곡을 따라 물줄기가 흘러 들어가 거대한 코로라도 강을 이루고 있다. 이 강물을 후버댐을 거쳐 네바다주, 아리조나, 로스엘졀레스까지 주민들의 식수와 생활용수, 농업, 산업에 쓰이고 있다. 발원지인 이곳이 강우량이 적은 켈리포니아 주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니 남다른 느낌이다.
물 한 방울도 없을 것같은 바위 꼭대기에 노목이 뽀족한 잎을 달고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메마른 사막에도 생명을 가진 것들은 꽃을 피우고 번식을 하며 삶을 이어간다. 인간은 자연에서도 늘 교훈을 얻는다.
네 번째 방문이지만 그렌드 케니언 협곡은 여전히 엄숙하고 비밀스럽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은 이 거대한 비경 앞에 내가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초라하고 작은 것인지 느끼게 된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몇 광년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경이로움에 저마다 느낌표를 가지고 일상으로 되돌아 간다.
여행은 혼자도 좋지만 마음 맞은 친구들이라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협회 세미나에 참석차 한국에서 오신 정교수님을 모시고 그렌드 케니언 여행을 갔다. 강의 시간에 미처 듣지 못한 그분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들의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 지나온 날의 역경뒤에 얻어지는 평온한 날들에 대해서, 긴 이동 시간도 지루한지 모르며 짧게 느껴진다.
좋은 것을 함께 보고 느끼며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여행은 우리들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리라.
그렇죠, 언제나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절로 겸손한 마음이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대단히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참으로
아무 일도 아님을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함께 해서 좋은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