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빗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그중에서도 잠자리에 누어 어둠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어떤 음악보다 편안하며 정겹다. 한밤중이거나 새벽에 내리는 자분자분 내리는 소리. 혹은 후드득 후드득 연속으로 이어지는 빗소리. 소박한 리듬의 반복이다.
온갖 소리의 공해에 노출된 현대인들은 그 단순한 리듬에 마음이 끌린다. 자연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소리. 인간이 만들어 내는 태크니컬한 소리보다 작위적이지 않아서 좋다. 의식하지 않은 사이 긴장하고 사는 이국의 거친 숨을 순하게 한다.
한 주일 내내에 비가 와도 괜찮을 것이다. 낯에 듣는 빗소리는 음계의 '솔’ 쯤이면 좋은 것이고 밤에는 듣는 소리는 '미'쯤이면 될 것이다. 비가 귀한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 이 겨울이 가기 전, 뜨거운 여름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으라는 듯, 요 며칠간 하늘의 공창에 모여있던 비가 한꺼번에 내려 마른 땅을 적신다. 사람들의 마음도 촉촉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이며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지난 주말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마른 대지를 적시고, 땅속 깊이 숨죽이고 있던 생명을 움트게 한다. 며칠째, 보도 위에 쏟아진 빗물이 얕은 곳에 작은 개울을 이루고 흘러간다. 늘 갈증을 가지고 있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푸근해진다. 비가 오지 않은 대지는 황량하다. 생명의 원천인 봄에 내리는 비는 하늘의 은혜이기도 하다.
사막의 사람들은 습관이 되어 눈치채지 못한 사이, 이렇게 사분사분 비 오는 날은 말랐던 정서도 부드럽게 풀어 놓고 사람들의 마음도 긴장을 해체 시킨다. 이곳의 모래땅에 3. 4일만 비가 와도 산과 들의 풍경이 달라진다. 뜨거운 대지 속에 숨죽이고 기다리던 생명의 씨앗들이 흠뻑 몸을 축이고 부풀어져, 생기를 얻고 어느 날 한꺼번에 싱그러운 자태로 산과 들을 초록 풍경으로 바뀌어 놓는다.
비 오는 날은 의식 하지 않아도, 내 안에 침잠해 있던 감정들이 소롯이 밖으로 나와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한다. 사노라면 천둥벌거숭이같이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를 느낄 때가 있다. 매일 치러야 할 일상의 것들에 치여 나 자신의 마음을 언제 드여다볼 여유가 있었던가.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일상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날은 메마른 공기가 모처럼 습기를 머금고 내 안으로 스며드는 날이다.
밤새 조곤조곤 내리는 빗소리에 세상의 모든 소란한 것들이 일순에 가라앉는다 이런 날은 온종일 빗소리만 들어도 좋을 것이다. 마음이 가는 데로 빗방울 소리에 귀를 맡기고. 활력을 얻은 뒤 세상 밖으로 나갈 에너지를 비축한다 .
빗소리를 듣는 순간의 감미로움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설레임.
이런 비를 요즘 자주 맞이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며 또 빗소리에 젖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