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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수 있을까
무게
산 하나 담긴

달 수 있을까
고요
저 못에 담긴

큰 저울 있어
세상에

달 수 있는
하늘 저울
마음일 뿐.


―유경환(1936∼2007) 

가을 하늘이 높아지면 갑자기 세상이 확 넓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착시라도 좋다. 눈앞의 공간이 넓어지면 우리의 생각은 그만큼 더 자라나고 싶다.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 우리를 부추기고 있다.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너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단 5분이라도 고요히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을 쥐고 앉아 있으면 어지러운 마음 호수가 잔잔해질 것만 같다. 그럼 우리의 마음은 가을 하늘을 본받아 더 청명해지고 높아지리라. 

 

오늘은 우리의 가을 사색을 도와줄 시를 소개한다. 유경환 시인은 아주 여러 편의 ‘낙산사 가는 길’들을 썼다. 그것을 모아 시집 ‘낙산사 가는 길’을 내기도 했다. 같은 제목의 연작시라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이 작품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유경환 시인은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는데 박두진 시인은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러니까 유경환 시인이 이 시로 상을 받을 때에는 시인, 스승, 그리고 스승의 스승이 함께했던 셈이다.

시가 간결해 보이지만 허투루 쓰인 말이 없다. ‘저 못에 담긴 고요, 산 하나 담긴 무게’와 같이 단어 하나하나 맞춰서 골랐다. 깔끔하게 정제된 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작품은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을 열매처럼 품고 익어갈 수 있을까. 이번 가을이 그런 가을이면 좋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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