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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따위는 없고, 빈 하늘에 부끄럽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그리움 되지 못한 몸
여기 와 무슨 기도냐
별 아래 그냥 취해 잤다

―김원각(1941∼2016)

남해에는 금산이 있다. 그곳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곧잘 들었다. 시 공부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사람에게서 듣지 않고 시로부터 듣는다. 남해의 금산 이야기를 가장 널리 알린 사람은 이성복 시인이다. 그는 ‘남해 금산’이라는 아주 아름답고 환상적인 시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무려 남해인데 우리에게 남해의 시가 하나뿐일 리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또 다른 절창을 소개하고자 한다. 남해에 주석처럼 달려 있어야 할 ‘남해 보리암에서’이다.

금산에는 보리암이 있다. 남해는 우리 땅의 가장 아래 끝이고 보리암은 그곳에서도 맨 꼭대기다. 그러니까 보리암은 이중의 끄트머리인 셈이다. 더 갈 곳이 없고, 더 가고 싶은 곳도 없는 곳이라는 말이다. 절정 같은 보리암에서 시인은 소원 대신 부끄러움을 생각한다. 이 의외의 장면에서 우리는 잠깐 멈칫하게 된다.

건강과 합격과 승진 같은 소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시인은 인간답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더 큰 소원을 가졌을 뿐이다. 복잡한 속세를 초월한 듯, 별 아래 취한 시인의 자세가 상쾌함마저 느끼게 한다. 더 길게 말을 보태지도 않는다. 촌철살인이 김원각 시인의 스타일이다. 매력을 더 느껴보고 싶다면 그의 시조집 일독을 추천한다. 여름휴가 하나 가기 어려운 복잡한 심사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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