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어요? / 조이섭
치과에 들렀다가, 이른 점심으로 조선에서 제일 맛있다는 현수막이 걸린, 9천 원짜리 소고기국밥을 한 그릇 먹었다. 거스름으로 받은 천 원권 한 장을 챙겨 지갑에 넣고 가게 문을 나섰다.
현대백화점 주차빌딩 옆으로 난 길을 빠져나와 계산 성당 뒷길로 접어들자, 먼발치에서 웬 아주머니 한 분이 멈칫멈칫하며 두리번거렸다. 저만치 앞서가는 두 사람을 쫓던 눈길이 나에게 와서 꽂혔다. 길을 물으시려나 하는 마음에 멈춰 섰다.
가까이 다가서는 그녀의 입성은 남루하고, 밭에서 김매는 아낙처럼 머리에 손수건을 덮어쓰고 있었다. 땟국물이 흐르는 마스크를 낀 채 요즘 보기 드물게 보따리 하나를 가슴팍에 부여잡고 있는 모양새로 봐서는 예사 분이 아니었다. 아무튼 길을 물으려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배가 고파요"
보따리를 쥐고 있던 손 하나를 내려 홀쭉한 배 언저리에 갖다 대며 말했다. 한 푼 보태 달라는 게 아니라,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녀는 배고프다는 말을 던져 놓고는 고개를 살짝 비틀어 숙였다.
나는 방금 인심 좋은 주방 아줌마가 넉넉하게 담아 준 소고기국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온 터다. 대파에 무 숭숭 썰어 넣고 가마솥에서 끓인 국에 하얀 쌀밥을 말아먹었다. 거기다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 한 접시와 삶은 달걀 한 개까지 남김없이 먹고 겨우 몇 발짝을 떼었으니, 불룩 나온 배를 감추기에 역부족이었다. 얼른 배에 힘을 주어 보았지만, 그게 맘대로 들어갈 리가 있나. 배부른 것이 짐짓 부끄럽기는 처음이었다.
지갑을 꺼냈다. 그 안에는 오늘따라 지폐가 종류별로 들어 있었다. 오만 원권 지폐 한 장, 만 원권 한 장, 오천 원권 한 장, 마지막으로 소고기국밥 집에서 거스름으로 받은 일천 원권 한 장에다 액면가 만 원짜리 온누리상품권 한 장으로 아무 짝에 쓸모없는 구색을 갖추었다.
지갑을 벌려 지폐를 선택하는 일 초의 절반 사이 머리가 복잡했다. ‘한 푼 주세요’ 했다면 틀림없이 천 원짜리를 꺼냈을 것이다. 그런데 배가 고프단다. 오천 원으로는 국수 한 그릇도 못 사 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어 만 원짜리를 끄집어내었다.
"아주머니, 저기 돌아가면 소고기국밥 팔아요"
그녀는 돈을 받아 들더니 제가 이빨이 없어서요, 하면서 마스크를 내리고 입을 쩍 벌려 듬성듬성한 치아를 드러냈다. 그 말과 이어지는 동작이 얼마나 잽싼지 눈길을 접을 겨를도 없이 썩어서 까맣게 변한 이빨들이 화살처럼 내 눈에 박였다.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그때 예감했다. 오늘 그녀와의 조우 장면은 금방 잊힐지라도, 그녀의 검은 이빨은 오래오래 나의 뇌리에 남으리라는 것을. 돌아서 가는 길에 세차게 도리머리를 해봐도 눈에 박인 검은 화살촉이 쉬 사라지지 않았다.
아, 그녀는 어쩌자고 입을 있는 대로 벌려 상한 이빨을 보여 주었나. ‘한 푼 줍쇼’ 대신 ‘배가 고파요.’라고 말하던 솔직한 눈빛만 남겼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치과 다니느라 섭식에 소홀하다가 모처럼 배부른 자에게 내린 형벌치고는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때마침, 담 너머 성당에서 삼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땡땡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