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틀니 / 예수백

 

 

어머니가 시골집에서 대퇴부 골절상을 당했다. 읍내 병원에서 수술을 어머니 받았지만 오랜 기간 입원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누운 채로 간병사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간병사가 1일 3교대 근무를 하며 환자를 돌보고 있어 보호자의 간병 어려움은 많이 덜 수가 있었다. 입원한 이후로 우리 형제들은 각자의 일이 겹치지 않는 요일을 정해서 어머니의 간병을 돕기로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병원에 갔다. 병실 앞 세면대에서 간병사가 고무장갑을 끼고 환자의 틀니를 씻고 있었다. 나도 어머니 틀니 씻는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식사가 끝났다. 틀니와 칫솔 치약을 쟁반에 들고 세면대에 섰다. 쟁반에 물을 채웠으나 선뜻 손이 틀니에 나가지 않았다. 진분홍색을 띠고 있는 잇몸과 치아, 어머니의 틀니이지만 께름칙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물건은 어머니의 것이며 어머니의 틀니를 씻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마음을 풀어놓았다. 어릴 적, 어머니는 내가 비벼서 먹다 남긴 밥을 아무렇지 않은 듯 먹었다. 나는 밥상 위에서, 방바닥에서 바가지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의 틀니를 씻는 일이 효도가 아니겠는가. 장갑을 낀 고무손이 아니라 맨손으로 틀니를 씻었다. 마지막에는 냉온수기의 물을 받아와서 깨끗이 헹구었다. 이 일이 뿌듯하게 느끼는데까지는 적잖은 마음의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이었다. 간병사가 나에게 가만히 말을 걸어왔다. 어머니가 요즘 좀 이상해졌다고 했다. 자기의 경험으로는 노인 환자가 몸 어딘가에 이상이 있으면 징조가 좋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보호자의 어머니도 요즘 잇몸이 갑자기 쪼그라들었다고 했다. 틀니를 끼워서 밥을 씹으려 하면 틀니가 금방 흘러내려 음식을 씹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아직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담당 의사도 차츰 나아지고 있다고 격려해 주던 터였다.

 

급하게 병실을 찾았다. 어머니에게 그간 사정을 물었다. 잇몸이 아픈 것은 전에도 가끔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오래가고 많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입을 벌리게 하고 입속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틀니도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연세가 아흔이 되어가니 이렇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심란했다.

 

어머니는 아흔다섯 되신 분과 옆 침대에 나란히 입원해 있었다. 어머니는 체격이 작고 말이 없는 편이지만 옆 할머니는 체격이 크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우리와 같은 성씨라 어머니는 그분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도 자연히 그분의 보호자와도 인사를 나누고 지냈다.

 

그쪽 보호자가 나에게 나직이 말했다. 자기 어머니의 연세도 연세인지라 언제라도 준비해야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언제부터인가 잇몸 전체가 부어올라 틀니가 들어가지 않아 잇몸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틀니를 제대로 끼지도 못해 밥을 국에 말아서 마시듯 먹든가 죽을 쑤어서 먹게 한다는 것이었다. 아흔다섯이나 되신 노인이니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에 동병상련의 기분까지 들었다.

 

한 주가 지나서 병실 문을 열었다.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 벽에 드리운 고요함이 질식할 것 같던 병실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힘없는 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가늠하고 난 후 쓸쓸히 눈을 반쯤 감아버리던 그런 병실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병실의 웃음소리였다. 크게 뜬 눈으로 어머니가 누워있는 침대를 훑어보았다. 어머니도 웃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옆 침대 할머니의 보호자가 말했다.

 

“간병사의 실수로 두 할머니의 틀니가 서로 뒤바뀌었답니다. 그래서 그쪽 어머니는 틀니가 커서 덜거덕거리면서 잇몸에서 흘러내려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우리 어머니는 틀니가 작아서 억지로 잇몸에 끼우니 너무 아파 밥을 씹지 못하니 죽을 먹었답니다. 서로 남의 틀니를 끼우고 생활했으니….”

 

나도 엷은 웃음이 나왔다. 본래 치아를 대신하여 틀니에 의지하며 겨우 일상을 지켜 왔는데, 갑작스럽게 커다란 잇몸 변화를 겪은 두 분은 내심 어떤 심경이었을까, 삶과 죽음이 잇몸에 있음을 실감했으리라, 삶에는 가끔 틀니처럼 다른 사람의 운명을 서로 바꾸어 가며 사는 경우가 있을 법한 일이었다.

​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