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참나무 생각 / 정태헌 

 

그해 봄, 우린 처음 만났다. 땅끝 전망대를 오르는 자드락길, 그는 저만치에 서 있었다. 훤칠하고 미끈하며 볼품있는 나무도 아니었는데 눈길이 쏠렸다. 회백색 거친 수피에 세로로 골이 깊게 팬 것일 뿐, 한데 조선백자 같은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이 들었다.

더러 산길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일행에게 물어보니 졸참나무란다. 산지에서 흔한 나무라는데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예의가 아니지 싶었다. 민출한 자작나무나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에 견줄 수는 없겠으나, 서 있는 자태가 제법 의젓했다. 외진 산비탈에 살면서도 스스로 다독이며 담금질한 덕분이었으리라.

마침 나뭇가지 끝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겉껍질을 벗고 움이 돋아 새순을 내밀고 있었다. 그동안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견뎌냈기 때문이리라. 가녈가녈한 저 가지로 모진 해풍을 어찌 견뎠을까. 안쓰러웠지만 새순을 보니 적이 마음이 놓였다.

졸참나무, 잎과 도토리는 장기의 졸卒과 같이 작다 하여 그리 부르는 모양이다. 하긴 열매의 생김새를 보고 이름 지어진 나무 이름이 한둘이던가. 열매가 장구 모양 같다 하여 장구밥나무, 두 개씩 마주 보고 달린 모양이 개불알 같다 하여 괴불나무, 둥굴고 반질반질하여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중대가리나무, 쥐똥 모양 같다 하여 쥐똥나무라 불리기도 하니 말이다. 졸참나무도 열매와 잎을 보고 그리 불린 것이겠지만 그래도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잎이 넓고 커서 클 것 같은 떡갈나무는 외려 나무 크기로는 가장 작지 않던가.

그 졸참나무를 다시 만난 것은 이태 후, 늦가을이다. 그때처럼 곤돌라를 타지 않고 전망대까지 걸어 오르는데, 졸참나무는 그곳에 여전히 서 있다. 그때 봄과 다르다면 가을을 맞아 헐벗은 탓인지 수척해 보이지만 대신 작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외진 산길에서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꾼 덩어리가 도토리가 되었을까. 녹음 속에서 도토리를 잉태하여, 소쩍새 울음소리에 움을 틔우고 새순을 뽑아, 가을 햇볕에 열매를 여물게 하였으리라.

깍정이殼斗도토리인데 말 그대로 다른 참나무 종류 중에서는 가장 작을 듯싶다. 하나 열매로 만든 묵은 찰기가 많아 맛이 부드러우며 약재로까지 쓰여 제구실을 톡톡히 한다. 흉년이 들면 저 스스로 열매를 더 많이 맺는다니 참으로 가상한 나무가 아닌가. 게다가 목재는 건축, 목기재로 대접을 받으니 '졸卒'참나무라는 이름은 잎이나 열매 생김새만 보고 붙인 것에 불과하다. '참'나무란 나무 중에서 가장 재질이 좋고 진짜 나무란 말이 아닌가. 겉만 보고 속을 짐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식물이나 사람이나 값어치 있는 모습은 서로 닮는 모양이다.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이니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졸참나무 열매를 보면 똑 닮았다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구순한 사람이다. 그는 졸참나무 열매처럼 몸피가 오종종하고 키가 작다. 하나 졸참나무 열매처럼 찰기가 있고 결이 고운 중년 사내다. 그의 외양은 주변의 눈길을 끌진 못할지라도 은근히 다가서게 하는 묘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졸참나무처럼 자신의 처지에 푸념하지 않는다. 애오라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늘 힘들게 일을 한다. 하지만 고된 자신의 처지를 탓하는 것을 보거나 들은 적은 없다. 외려 자신보다 더 나은 자들을 위로하고 다독이기까지 한다. 또한 남의 허물을 이러쿵저러쿵 입에 올리거나 허투루 분별하지도 않는다. 남의 허물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을뿐더러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설령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업신여겨도 너그럽고 문문하다.

가멸지 못한 살림살이에도 제 것 쪼개 이웃과 나누며 남 섬김을 지성으로 한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 손해 보려 작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각다분한 세상에 우둔한 사람일는지도 모른다. 하나 향기 있는 곳에 벌 나비가 모여들 듯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 사내는 졸참나무처럼 변두리 한곳에 붙박여 살고 있다. 어디가 몫 좋은 곳일까 넘성거리지도 않고, 이문을 좇아 그곳까지 달려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보다 더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는 그를 보면 졸참나무가 떠오른다.

숲속의 나무는 봄여름엔 푸름과 녹음에 가려 특징이 잘 분별되지 않는다. 하나 가을이 되면 그 나무의 진가와 수형이 드러나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남긴 열매를 보면 그 쓰임새를 짐작할 수가 있다. 그뿐인가. 단풍을 보면 그 나무의 속성 또한 알 수 있지 않던가. 졸참나무의 단풍을 보라. 개결하고 깔밋한 단풍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맑고 훈훈하게 해준다.

사람도 생의 가을을 맞이하면 나무처럼 참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가 살아온 뼈대와 일궈온 열매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을, 내 생의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과연 제 몫을 제대로 일구며 살아왔는지, 이 가을에 졸참나무가 삶의 갈피를 되작이게 한다. 속 빈 강정이니, 빛 좋은 개살구니 하는 말만은 면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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