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 回光返照 / 고경서(경숙)
가덕도 너머로 해가 진다. 아미산 전망대서 바라본 노을은 화려하면서도 장엄하다. 하루를 소진한 태양을 애도하는 양 잉걸불처럼 벌겋게 탄다. 고요한 화염이 나를 빨아들이는지 내가 빨려드는지 모를 감정의 물살에 휘말린다. 어제는 황금빛 계열로, 오늘은 선홍색으로 바다와 하늘을 덧칠한다. 쇠잔한 빛살이 농담濃淡을 달리해도 갈등이나 대립 없이 스며들고, 번지고, 물들이면서 영역을 넓혀간다. 미인의 눈썹처럼 길게 뻗은 물길이 모래톱을 끼고 에돌아 흐른다. 비탈에 선 하루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일몰을 응시한다. 찬바람 속에선 노을이 더 붉다. 빛의 그물에 걸린 바다가 형형색색의 물비늘로 반짝인다. 몽환적이다. 소멸에 든 해 그림자가 생의 끈을 필사적으로 붙드는 양상이다. 지난날의 아프고 힘든 시간이 겹쳐진다. 반짝이는 물결 사이로 한 사람이 떠오른다. 자유 의지로 선택한 삶이 죽음의 공포에 맞서 심해로 잠수를 탄 마크 로스코다. 절대고독으로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의 작품 <레드>를 환기시킨다. 화폭 전체를 빨강색으로 칠했는데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에 들끓는 용암이거나 선혈이 낭자한 불꽃 같았다.
그 적색은 결핍과 욕망의 색이기도 해 생명이 있는 한 소유가 충족되지 않고, 죽음에서만이 온전히 벗어날 수 있다. 탄성을 자아낸 영적인 힘의 파장 탓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랑에서 증오에 이르는 정열적인 색상인데도 비장감이 서렸던 것은 그가 존재의 숙명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 그림 속에서 장렬히 산화했기 때문이다.
일몰과 함께 낮과 밤이 교차하는 해거름에는 모든 존재, 즉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순간과 영원 따위가 이원성을 드러내며 순환하거나 종지부를 찍는다. 지금처럼 뉘엿뉘엿 지는 해는 인간 세상의 황혼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알싸한 통증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쉼 없이 살아 꿈틀거리는 바다도 감정이입으로 몰아간다. 매 순간 느낌의 진폭이 다르다. 세월의 풍파로 노화에 든 육체가 견디고 버텨낸 삶의 무게마저 내려놔야 하는 부담감으로 홀가분하지가 않다. 게다가 진작 잊혔을 참담한 기억까지 선연히 떠올라서 등뼈를 곧추세우는 석양을 뜨겁게 껴안을 수밖에 없다. 저 눈시울을 붉히는 노을은 회한이요, 그리움이다.
아버지는 생의 난바다에서 암이라는 이안류에 휩쓸려 오래 투병생활을 하셨다. 작은 병원에 입원 중인 그날은 사흘간의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TV화면으로 본 사찰에 걸린 연등행렬은 환자의 고통과 다른 축제 분위기로 술렁거렸다. 주치의는 휴무였고, 간호사들만 병실을 오갔다. 진통제 패치를 두개나 붙였는데도 통증은 심해졌다. 어금니를 깨물며 아픔을 호소하는 몸부림이 처절했다. 앙상하게 남은 뼈대만 주물러 드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신음소리가 잦아지면 간호사실로 달려갔다. 간호사는 진통제의 강도를 한 단계씩 높인다며 두어 차례 링거에 약물을 주입했다.
아버지의 눈꺼풀에서 경련이 일었던가.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혼수상태로 꼬박 사흘을 넘기고 있었다. 참으로 아둔하게 무의식에서 깨어나리라 믿었지 생명이 꺼져간다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실체가 없는 희망이 점차 불길한 예감으로 바뀌면서 피를 말렸다. 셋째 날 새벽, 바다가 포말을 토해내듯 코와 입으로 흰 거품을 게워내셨다. 몸속에 그토록 많은 양의 기포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일시에 터져 나온 분비물을 절규인 듯 지켜보았다. 그것은 침묵의 발화였고, 소통이었을까. 그리고 몇 분 후, 모니터가 일직선을 그으며 멈췄다. 죽음이 거짓말 같고,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말없이 어둠을 벗어젖히던 먼동도 밤의 마취에서 덜 깼는지 혼곤하기만 했다.
연휴가 끝나고, 의사에게 진통제 과다로 사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차피 돌아가실 목숨입니다. 통증 없이요.....”라고 짧게 대꾸했다. 밑도 끝도 없이 잘라낸 토막말에서 단지 죽음의 시간을 앞당겼을 뿐 극심한 통증은 없었지 않았냐는 투로 내 귀는 알아들었다. 그 매몰차고 야박한 언사에 한마디 항변조차 못한 채 우두커니 있다 문을 닫고 말았다. 그 말은 제대로 가슴에 못으로 박혔고, 찔린 상처는 노을을 볼 때마다 아물지 않고 덧났다. 아버지의 죽음에 그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졌다. 한 생명이 사라졌는데 세상은 그대로였다. 울분에 찬 마음에 자주 혓바늘이 돋았다.
지는 해도 벼랑길에선 저렇듯 광휘로운데 아버지는 어쩌자고 의식도 없이 그 먼 저승길을 홀로 갔을까. 북망산천을 무주고혼으로 떠돌지는 않으실까. 불효자식이 핏빛 석양에 비통한 심정을 짓찧는 걸 보고는 계실까. 불타는 노을 앞에 설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보다 유명을 달리한 그 참담한 시간들이 회한으로 사무쳐 용서를 구하는 것이리라.
석양을 배경으로 모래톱이 있다. 태백의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칠백리 길을 흘러와 하구에서 긴 노정을 끝낸다. 하구는 바다의 입, 강의 상류로부터 떠밀려온 퇴적물이 모래톱이다. 삶의 격랑이 지나간 내 심연에도 모래톱이 있다. 슬픔과 두려움, 고통과 먹먹한 그리움 등이 층층이 쌓였다. 아버지의 부재에 이르면 홀로 감당하셨을 그 마지막 순간이 어이없어 한숨과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직도 그 황망한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사별을 체화하기까지는 더 많은 노을을 끌어안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잔뜩 웅크린 바다를 만지는가. 잔광마저 윤기가 돈다. 바짝 긴장한 하늘도 잠시 환해진다. 해가 떨어지고 어스름이 내리기 직전, 아쉬운 듯 머뭇거리는 그 틈새로 일순 밝은 빛이 비치는 자연현상을 회광반조라고 한다. 이같이 사람도 목숨이 경각에 이르면 맑은 정신이 잠깐 돌아옴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경을 헤매는 그 찰나에 소중한 가족의 음성을 들으면서 이승과 작별한다는데 아버지는 의식도 없이 눈가에 물기만 맺히셨다. 어떤 망자는 사후에도 눈을 뜬다는데 당신께선 감은 눈으로 귀 막고, 입술을 닫은 채 조용히 운명하셨다. 죽음과의 사투도 없이 홀연히…….
작은 배 한척이 하구 쪽으로 급히 내달린다. 바람의 기척에 예민해진 바다가 긴 혀로 모래톱을 핥았다 내뱉는다. 검은 새 한 마리가 젖은 발로 날아오른다. 인간은 새처럼 날개를 갖지 못해 무수한 길을 품안에 감추고 있다던가. 한낮의 태양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노을은 한바탕 통곡이라도 쏟아내라고 제 가슴을 내어주는가. 사부곡이 하늘로 오르는 긴 외줄을 탄다. 마음속 어스름 따윈 버리고, 비우고, 잠재우라며 흔들어 깨우고 있다. 저녁이 어둑발을 신고, 등을 켜는 도요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신생의 땅, 모래톱은 밤마다 나무가 자라는 섬을 꿈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