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들에 나의 황금소를 누이리니 / 서숙

 

 

아침 여섯시, 12월의 어둔 새벽에 추적추적 비는 내리는데 지난밤에 푸른 섬, 겨울에도 푸른 섬 진도에서 아리랑 가락에 취해 술과 여흥으로 도화살을 풀어냈건만 이제 다시 역마살을 풀려고 해남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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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간의 역마살과 도화살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 감미롭다. 준마를 지즐타고 세상을 떠돌며 복숭아꽃이파리를 흩뿌리는 살풀이는 얼마나 멋진 일이냐. 때로는 대금의 웅숭깊은 울림으로 여울지고 때로는 피리의 긴박한 자진모리로 신명날 것 아닌가. ‘다만 때맞추어 즐거움 다해야 하리.’ 일찍이 이런 시구도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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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소 한 마리가 저 멀리 인도로부터 부처와 경전을 등에 싣고 와 이곳 달마산 계곡에 편히 몸을 뉘었고 그를 받들어 신라의 승들이 그 자리에 세운 절이 미황사(美黃寺), 美는 아름다운 소를 의미하고 黃은 소의 잔등에 실려 있던 금빛 부처를 가리킨다. 지난밤 찬비에 씻긴 듯, 단청 벗겨져 나뭇결 보드랍게 드러낸 대웅보전 앞에 귀한 보물을 가득 실은 목선의 찬란한 꿈이 아롱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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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고 절 주위에 안개가 엷게 번졌다. 그러더니 어느덧 구름이 스르르 밀려가며 홀연히 숨어있던 정경 한 폭을 펼쳐놓는다. 우뚝우뚝 깎아지른 바위산이 산사를 빙 두른 병풍 되어 시야에 가득하다. 감싸고 있는 바위 절벽은 웅장하여 시선을 압도하는데도 옴폭 들어앉은 절터가 호젓하여 아늑하다. 선명하게 결과 명암을 드러내던 산은 어느새 유유히 다가온 물안개로 뿌윰히 흰 장막을 거느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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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타고 물 건너 인도로부터 건너온 검은 소를 개금(改金)하여 숨바꼭질하는 바위산의 모습에 겹쳐놓는다. 내 안의 황금 소는 나에게 무엇을 싣고 왔었던가. 그리고 나와 어떻게 숨바꼭질을 하였던가. 늘 음악이 흐르고 사철 꽃향기가 맴돌고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는 집, 창문의 박공에 새겨진 조각이 아름다운 집에서 나는 하늘하늘 얇은 옷을 입고 무척 맛있는 음식을 조금만 먹고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느 날 그만 나는 영리하게도 현실에는 배경음악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자 주변은 오직 잡다함 속에 향내를 잃고, ‘무거워, 무거워’ 하면서도 여러 겹의 옷을 걸친 나는 쫓기는 허기 속에서 맛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많이 먹게 되었다. 아마도 그만 그 소를 잃은 탓이겠지. 내가 소를 버린 것인지 소가 나를 떠난 것인지 아리송하다. 혹은 내가 슬그머니 고삐를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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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각하면 나와 나의 황금 소는 긴 이별 짧은 만남을 반복해왔던 것 같다. 소는 스스로 나를 찾아오기도 하고 내가 소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아, 이토록 아름다운 나의 황금소를 내가 잊고 있었다니.’ 되찾은 기쁨을 즐긴다. 요행히 그는 여위지도 늙지도 않는 마냥 그러한 자태가 변함이 없이 결코 영원히 사라지는 법은 없다. 그 소는 슬픈 노래 한 구절을 따라오기도 하고, 누군가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도 되살아나고, 잠결에 꿈속에서도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러나 결코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그 소가 내게 내미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잡을 수가 없고 저 하늘의 별처럼 멀고 아득한 것은 아닐지라도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오롯한 것, 분명히 실존하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 촉감도 생생하게 한 품에 가득 안아보지만 한 순간 거품 되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손에 잡힌 것은 이미 그리움의 대상이 못될 것이기에 감질 나는 안타까움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나의 삶에 그와의 추억은 채색무늬 곱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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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 앞에 업경대(業鏡臺)가 놓여있다. 업경대에는 한 일생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고 한다. 또르르 구르는 연잎위의 이슬 같이 미미한 우리네 일생에 한 인간이 토해낸 한숨의 숫자와 흘린 눈물의 양에 있어 다른 이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는지. 우리 앞에 놓여 진 거울은 결국 백설공주의 계모가 가지고 있던 거울과 같다. “거울아, 거울아. 나는 누구니?” 결코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우리는 우리의 진실을 고작 허상에 불과한 거울에게 비춰보고 거울에게 물어본다. 그러니 거울이 제아무리 맑고 깨끗하여도 그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하면 곤란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진실보다 더 진실이 되게 하는 환상의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현실이 내게 주지 못하는 것을 주고 현실보다 더 나를 지탱하는 힘, 누더기를 황금 옷으로 둔갑시켜 누추한 모습이 누추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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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별과 달이 나타나고, 밤에는 해가 열리네(晝現星月夜開日).” 응진당에 걸린 주련에는 무한한 편재의 세계가 담겨있지만, 우리의 삶이 어디 그에 미치는가. 낮에는 해를 반기고 밤에는 별과 달을 섬기면 될 것인데, 하필이면 낮에 보이지 않는 별과 달을 찾고 밤에 태양을 가린 어둠을 탓하며 늘 쯧쯧 혀를 찬다. 다다르고자 하나 이미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마음이 그리움 한 자락을 떨쳐낼 수 없어서 하릴없이 가슴에 손을 얹고 망연히 먼 곳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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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를 한 바퀴 돌고 갓 피어나는 동백과 벗하며 한적한 산책로에 이어진 아름다운 부도 밭도 살피다보니 날은 완연히 개어 눈앞의 초지가 더욱 푸르다. 단풍나무 몇 그루가 나목이 되어 가지에 달고 있던 꽃보다 붉은 이파리들을 이제는 발치에 거느리고 이불처럼 덮고 서 있다. 아직도 고운 빛깔을 잃지 않고 뿌리를 포근히 덮어주고 있는 단풍잎. 나의 꿈도 또한 저런 모습이기를,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저 꿈꿀 수 있어 그로써 행복하기를, 꿈만 꾸어도 그것이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되기를 가만히 기원해본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황금 소를 저 푸른 들판에 누인다. 저 곳에서 더욱 아름다우리니 구태여 끌고 가지는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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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그만 안녕.

살다가 목이 메면 다시 너를 찾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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