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지는 밤 / 강천
달빛 스민 밤, 숲 공기가 으스스하다. 흩날리는 낙엽과 함께 떠나보냈던 벚나무의 잔상이 불회목처럼 남아서 마음을 짓누른다. 여운인지, 미안함인지, 집으로 들지 못한 발걸음이 의지처라도 되는 양 공원의 노목 아래로 찾아들었다.
고별. 어제의 삶이 오늘은 주검이 되었다. 누구의 잘잘못도 아니었다. 제 본성대로 살 수 없는, 예속된 존재들의 거부할 수 없는 비애일 뿐이었다. 으스름달이 조문 등처럼 내걸린 밤. 파리한 냉기가 송곳 다발처럼 쏟아져 에는 이 밤. 그들은 고별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영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이웃들의 헌화가 가을밤이 깊어지도록 그칠 줄 몰랐다. 만장 같은 색색의 낙엽들이 죽은 나무의 마지막 시간을 배웅하고 있었다. 감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나무까지.
삶. 옆으로 나란히 선 아파트 사이의 좁은 길섶이 이들 삶의 터전이었다. 토막이 되어 드러누운 날나무와 살아서 애도하는 생나무는 서로 이마를 맞대어 굴길을 만들었던 지기였다. 같은 날, 같은 시에 심어져 자나 깨나 마주한 세월이 어언 삼십 년. 봄볕 좋은 날은 화사한 꽃을 내어 자축했고, 동짓달 모진 풍파는 서로에 의지하며 달랬다.
봄. 지난겨울 두 나무는 사람살이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잔가지 하나 남기지 못하고 싹둑 잘렸다. 봄이 왔을 때, 이들은 한 송이의 벚꽃도 피워내지 못했다. 온 세상이 연둣빛 활기로 술렁거릴 때, 아직 눈을 뜨지도 못했다. 남겨진 잎눈과 꽃눈이 없어 봄날이 다 지나도록 바지랑대 같은 모습으로 멀거니 서 있었다.
갈림. 오월도 한참이나 흐른 날, 한쪽 나무에서 이적처럼 새순이 나오고 여린 가지들이 자라났다. 때늦음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무성하고 커다란 잎을 여름 늦게까지 올렸다. 다른 한 나무는 끝내 잎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진액을 흘려 가며 상처를 치유해 보려던 몸부림을 오가는 내내 지켜보았기에.
노제. 어떤 희망의 거름도 받아보지 못하고 남아있던 그나마도 베어졌다. 도막도막 잘렸다. 톱날이 훑고 지나간 그 면면에는 미련인 듯 여한인 듯, 톱밥이 눌어붙어 있었다. 삶과 죽음이 확연히 갈라선 날이었다. 살아남은 나무의 고운 단풍잎들이 수의가 되어 주검을 감싸주었다. 산 나무도, 죽은 나무도, 달빛도, 나도 말이 없었다. 삶터에서의 마지막 노제에 올리는 석별의 술잔인가, 몌별의 눈물인가. 남겨진 그루터기에 촉촉이 이슬이 내려앉았다. 집사를 맡은 갈바람만 허둥대며 장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법칙. 나는 이 참사를 빚은 장본으로 초대된 참관인.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진 나무의 비탄을 기억해야 할 증인이었다. 사위를 둘러싼 조문객들의 무거운 침묵이 나를 향한 시위인 듯하여 괜스레 몸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모든 생태가 이런 것이지 않으냐고. 서로 이용하고 먹고 먹히는 사슬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기에 본의나 타의가 어디 있느냐고. 누구 탓이나, 무엇 때문이라는 사연 따위는 약자들의 변명일 뿐이라고. 적자생존의 세계라고. 제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곧바로 도태되는 자연법칙의 한가운데가 아니냐고. 인간만이 저지르는 폭압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유기체에도 공평하게 적용되는 준칙이 아니냐는 말. 인간이 가하는 무차별적 학대 때문에 지구 행성의 등불이 가물가물 사위어가고 있다는 양심의 소리는 슬그머니 밀어둔 채.
반려. 반려라고 하지 않는가. 짝이 되는 동무라는 의미다. 이 말 안에는 관계 맺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제되어 있다. 동행으로부터 위안과 즐거움을 받는 대신 자기도 정성을 다하겠다는 암묵적 약속이다. 묘하게도 세상의 온갖 존재는 한 그물 속 관계로 엮여 있다고 한다. 풀이 없으면, 풀을 먹고 사는 생명들이 살아갈 수 없다. 당연히 그에 기대는 분해자도, 상위 소비자도 사라질 수밖에. 따지고 보면 풀도, 벌레도, 새도, 사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피차의 반려.
공생. 생활공간 사이사이, 길섶 어디에서나 눈 씻음 해 주는 녹색의 반려들. 고적한 산책길에서 지친 마음을 안아 주고 삶의 숨결을 쓰다듬어 주는 무언의 동반자들. 무슨 대단한 호의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들 생존에 대한 고민 정도조차 해 볼 수 없는 것일까. 지혜로운 생명체들의 아름다운 선택지 공생. 서로가 서로에 등 기대고 살아야 하는 동반의 관계, 너와 나.
숲속 팽나무가 쉰 울음을 우는 밤, 가랑잎 밤새우며 흐느끼는 이 밤. 갈가리 찢긴 벚나무를 보내면서 자연과 사람에 관하여 묻는다.
